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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22. 2023

작은 조각들을 모아 보니 네가 되었어

초음파 사진으로 처음 마주한 너의 모습을 보고 엄청 설렜어

안정기라 불리는 12주가 되기 전까진 가족과 지인들의 임신 축하를 받으면서도 내심 불안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산모들이 계류유산으로 8주 이내에 아기를 잃는다는 걸 알았기에.


임신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야기. 이른 유산은 산모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 괜스레 불안했고 주변에 너무 일찍 알린 건 아닐까, 혹시라도 아기를 잃는다면 그 후의 나는 어쩌지 싶은 걱정에 빠졌었다.

그렇기에 남편은 내게 마인드컨트롤을 시켜주곤 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의 잘못은 아니고 네가 건강해야 아기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아기를 지키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임신기 단축근무 신청이었다. 일하는 엄마들의 모성보호를 위한 좋은

제도였는데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고 회사는 이를 허용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이었다.


나는 8년째 다니고 있던 회사에 5주 차 때 임신사실을 알리고 하루 8시간 중 2시간을 제하고 출퇴근할 수 있는 임신기단축근무를 신청했었고, 덕분에 12주까지 컨디션난조와 입덧의 고통 속에서도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업무상 인사관리가 주된 업무였던 나는 매번 상사들의 스케줄관리, 인사관리, 기본적인 회사의 사이클을 조정해야 하는 총무였으며 총무라는 직함 뒤에 숨겨진 포지션 애매한 많은 잡무들을 병행해야만 했었다.


그로 인해 늘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많았고 실수하기 싫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힘을 조금 내려놓아도 되는 타당한 이유가 생겼다.


아기가 생긴 후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일하고, 스트레스받지 않고, 주말부부도 청산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직장인 괴롭힘 방지법이 생기기 이전에  한 상사의 이유 없는 악의와 폭언으로 얽힌 내게는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업무적으로 얽힌 실수에 남자 부장은 탕비실로 업무 실수를 한 당사자가 아닌 중간 관리자인 내게 폭언을 퍼부었고 내 잘못이 1퍼센트도 없이 중간관리자란 이유만으로 욕을 듣고 나와 화장실로 도망쳐 벌벌 떨며 울었던 기억.


그 일이 시발점이 되어 아기가 찾아온 달까지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약을 복용해 왔었다. 당시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퇴사를 하려 했지만 그 일이 회사에 알려지며 여러 목격자와 당사자들의 면담 및 집행부의 결정으로 상사가 퇴사하는 것으로 정리되었고, 나는 사측의 배려로 한동안 오후근무만 하면서 예전처럼 정신건강을 회복하는데 힘썼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 이제는 정말로 일을 쉬어야 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이 인천이라는 말에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을 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타지로 갈 것임을.


그렇기에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후 복직하지 않기로, 남은 연차소진 후 산전 육아휴직을 미리 사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밝혔다.


21년도부터 신설된 산전 육아휴직이 내게는 너무도 큰 신의 한 수였다. 기존에는 만삭까지 근무를 하다 출산휴가를 사용하고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코스였다면 모성보호를 위해 아기를 낳기 전부터 미리 육아휴직을 분할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회사에 휴직 시작일과 내년 퇴사일자를 계산해서 전달했다. 인수인계가 한 달 가까이 이뤄졌고 후임은 뽑지 않는다기에 남은 직원들에게 그동안 맡아왔던 일의 큰 포지션을 나누고 세부적으로 어떤 업무는 누구에게 줘야 할지 조율했다. 내 업무분담표를 본 사람들 중 몇은 이렇게 많은 걸 했었어?라고 묻기도 했는데 세세한 것까지 다 정리하고 나니 내가 봐도 많은 업무들을 갖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일찍 쉬게 된 덕분에 인천에 올라가서 자리 잡고 생활하며 주말마다 왔다 갔다 했던 신혼집에 이삿짐을 옮기고 혼인신고와 전입신고도 할 수 있었다. 낯선 타지생활이었으나 마음은 편안했다.


쉬면서 지루한 날도 많았기에 가끔 일을 너무 빨리 쉰 건 아닐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안 그러면 아기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에 자리했다. 생각이 많고 복잡했던 나에겐 편안함과 안정만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요소였다.


진료를 보고 나면 항상 산모수첩에 그날의 초음파 사진들이 붙여져 있는데 갈수록 커지는 아기집과 서서히 보이는 태아의 모습 그리고 젤리곰시절을 지나 어느덧 육안으로 팔다리가 갖춰지고 꼬리가 들어가 아기의 형태가 제법 보이기까지 그 사진들을 촤르륵 넘겨보면 제법 신기했다.


모든 순간 너는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중이구나.


해서, 초음파앨범을 구매했다. 오래오래 보관해두고 싶어서.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의 자궁 속에서 너는 이렇게 자라났어

라고 보여주기 위해.


열 달이라는 시간 동안 찍은 많은 초음파 사진들. 주수마다 변한 게 여실히 느껴지는 이 작은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네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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