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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15. 2023

길에서 주운 호두 두 알, 작은 새 한 마리, 그리고

그러면 그게 태몽이었나?

임신임을 확인한 뒤, 집에 가던 길에 남편이 무언가를 회상하듯 몇 주 전에 꾼 꿈 이야길 하나 꺼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인데(우리 아기는 허니문베이비였다) 꿈에 새들이 많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중 한 마리가 남편 품에 안겼다는 것이다.


-뭐야, 동물 꿈인데 왜 말 안 했어? 태몽인가 그게?

-그땐 몰랐지.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거 같기도?


잡꿈을 하루에 두세 개씩도 꾸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잠잘 때 꿈을 자주 꾸지는 않는 타입이라 했었다. 이미 좀 지난 꿈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나름 기억에 남는 꿈이니 태몽이지 않을까 싶었다.


-새가 컸어 작았어? 종류가 참새야 까치야 잉꼬야 뭐야? 기억나?

-작았던 거 같은데 종류는 몰라. 가물가물해.

-깨자마자 말해주지

-몰랐지


그런 뉘앙스의 대화를 나눴는데 종류나 크기를 물어본 게 큰 새면 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고 작은 새라면 딸일 것 같아서였다.


그 후 나중에 양가에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어머님은 내 임신을 짐짓 눈치채신 것 같았다. 태몽을 꾸셨다는 거다. 길을 가다 모과만큼 큰 튼튼한 호두 두 알을 줍는 태몽이었는데 그 때문에 짐짓 가능성이 가장 큰 우리의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 계셨다고 했었다.


그건 아들 태몽이야.

찾아보니 그랬다. 호두는 대게 아들을 상징하는 의미로 나왔다. 성별은 보통 16주 지나야 확정되는데 태몽으로 성별을 가늠해 보며 궁금해하던 시기에 누가 봐도 아들 태몽 같던 호두. 꿈이 딸바보라며 딸을 바라왔던 오빠는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태몽이 참 신기한 게 대충 나오는 상징들이 딸/아들 어느 정도 구별을 해주는 것 같긴 했다.


만월이도 16주부터 다리사이에 무언가 보인다는 힌트를 얻었다. 초음파기록을 보고도 현실을 부정하던 남편은 20주가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우리 아기가 아들임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운동은 태권도부터 시킬 거라고 했으니까. 세상에 내가 아들맘이 된다니.


성별이 확정되기 전 초음파각도법도 찾아보고 중국황실달력도 찾아보고 했는데 사실 결과는 늘 반반으로 떴었다. 어떤 결과에선 딸, 또 다른 성별검사에선 아들. 항간에 떠도는 성별테스트는 재미 삼아서만 보는 걸로.


태몽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것 같다.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다고 꿈에서 미리 힌트로 알려주는 건데 우리의 아기가 미리 꿈속에 나타나서 알려주는 걸까. 하늘에서 선택받은 천사가 나 이제 엄마아빠의 아기로 만나요! 우리는 어느 별에서든 만나 행복하기로 해요, 하고.


태몽은 보통 주변에서 꿔주지만 태몽이 없는 아기들도 간혹 있다던데 지인보다는 가족들이 꾼 덕에 나중에 아기가 내 태몽이 뭐였어? 물어보면 말해줄 이야기가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니 내 아기야, 건강하게만 태어나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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