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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13. 2023

봄, 엄마의 사랑을 유난히도 진하게 느꼈던 계절

몸의 변화는 너무도 분명하고 신기했다.

컨디션이 멀쩡한 평균의 상태에서 미묘하게 달랐던 임신 극초기의 증상들. 생리때와는 다르게 느껴지던 묘한 가슴의 묵직함과 시도 때도 없이 감기처럼 추워서 춥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시기. 이상하게도 자주 졸려오는 거 같았고 생리예정일을 이만큼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어플 주기를 일주일 이상 벗어나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임신 테스트기 사봐야겠다

주말부부를 하던 때였기에 남편에게는 일단 말하지 않고 몰래 테스트기를 사서 인천으로 올라갔던 금요일 밤. 이상하게도 묘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진짜 임신일까 설마 임신이 이렇게 바로 되겠어? 싶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마음. 주말 아침 부지런히 아침에 눈을 뜨고 숨겨두었던 테스트기를 하고 변기 위에 앉아 기다리는데 일분도 채 안 지났는데 두 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렇게 임신을 확인하고 5주가 지날 무렵부터 그동안 생전 없던 메스꺼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입덧지옥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틈만 나면 헛구역질이 올라와서 욱욱대며 입을 틀어막기 바빴다. 주말드라마에서 임신 클리셰로 자주쓰이는 밥먹다가 욱- 하는 연기는 사실에 가까웠다. 내 텀블러에는 항상 물이나 디카페인 루이보스티가 담겨 있었고 입덧완화에 좋다던 레몬사탕도 급히 구매해 간식서랍 속에 쟁여두었었다.


임신인 줄 몰랐던 때엔 생전 없다가 뇌에서 임신임을 알자마자 몸이 표현하고 있는 건지 헛구역질에 입맛도 없었고 종일 미식거려서 버스 타고 출퇴근하는 길은 너무도 고역이었다. 임신을 알고 엄마는 산전육아휴직을 쓰는 날까지 한 달 넘게 엄마 차로 출근을 시켜주셨다. 운전면허가 아직 없는 딸은 친정엄마 덕분에 편하게 출근할 수 있었고.


일 때문에 떨어져사는 평일 내내 남편에겐 입덧이 힘들다는 푸념을 달고 살았다. 다행히 세상이 좋아졌는지 산부인과에서는 입덧약 처방을 해주셨다.


꽤 비쌌지만 어차피 임신 후에 신청하는 나라지원 임산부바우처로 진료비, 약국비 사용이 가능했기에 나는 18주까지는 알차게 입덧약 처방을 받아서 바우처를 사용했다. 처음엔 약을 먹어야 한다기에 망설였지만(임산부는 약도 함부로 먹으면 안 되기에) 애초에 산부인과에서 처방해 주는 약이기도 하고 아기에게도 영향이 가지 않는다기에 주변에 입덧하는 임산부들이 있다면 참지 말고 산부인과에서 입덧약 처방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효과는 뛰어났다.


천안에서 인천까지 이동할 때에도 차멀미 예방에도 효과가 있었고 속시끄러운 울렁임에 밥을 먹지 못할 거 같았지만 약을 먹고 나면 한동안 미식거림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어떤 날엔 토덧을 했다. 약을 꾸준히 먹지 않고 컨디션에 따라 안 먹기도 했는데 그런 날엔 어김없이 밤 중에 줄어든 식욕 때문에 먹은 것도 없는데 위액을 쏱아내야했다. 처음 토덧을 경험하고는 엉엉 울었다.

오빠, 임신했는데 나 너무 힘들어

토하고 눈물 콧물 쏙 빼고 훌쩍이면 남편이 옆에서 안쓰러워하면서 챙겨주었지만 정작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보통 친정엄마의 입덧을 따라간다 하던데 어머님은 입덧 한 번 없었다고 하셨으나 엄마는 입덧이 심했었다고 했다. 그 기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입덧의 시기가 지난 지금은 조금 가물가물하지만 드디어 입덧약을 먹지 않아도 입맛이 돌고 컨디션이 좋았을 때 나는 환호했다. 드디어 입덧 끝났다고.


16주쯤부터 차차 줄여가다가 내 경우엔 18주에야 입덧약 복용을 끊었는데 사람마다 다르지만 다행히 양치덧, 먹덧은 아니었고 미식거림은 기본 옵션에 간헐적인 토덧으로 증상이 왔었는데 여러 경험사례들에 비하면 얌전한 입덧이긴 했었다.


그리고 만삭인 지금 나는 생각해 본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뭘 잘 모르고 있었으니 다행이지 이 모든 과정을 다 알면서도 또 아기를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겠다,라고.


열 달 동안 뱃속에 태아를 품고 살며 여러 과정을 지나 신생아로 건강히 나오는 그날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건 없다고 생각한다. 임신 후 맞은 봄-여름은 내겐 새삼 엄마의 사랑을 유독 진하게 느낄 수 있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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