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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10. 2023

지구에 온 걸 환영해 나의 아가

만월아 안녕?


280일 동안 품고 있게 된 (이제 예정일이 29일 정도 남은) 내 아기의 태명.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아기가 생기면 우리 딸은 무조건장만월이라고, 생기지도 않은 아기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곤 했다. 유쾌한 남편은 성격상 농담을 잘 던지곤 했는데 아기를 좋아하고 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 아마그때부터였나 보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아기는 낳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된 건.


남편을 만나기 전 나는 결혼도 뭐 마흔 전에는 언젠가 누군가와는 하겠지 싶었고 아기도 찾아오면 낳겠지만 딩크도 나쁘지 않겠다 싶긴 했었다.


임신이 쉬운 일도 아니고, 양육의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기에  결혼을 앞두고 남편과 자녀계획을 가질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엄마가 될 줄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라면 낳아서 기르고 생애 아무나 해보지 못할 경험인 임신과 출산을 겪어보게 되겠지-라고 먼 일처럼 여겨졌던 게 이제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삭 임산부의 입장에서 태어날 아기를 위한 기록을 하나 남겨보려 한다.


허니문베이비로 생긴 아기의 존재를 임신 5주 차에 알게 된 당시엔 조금 당황스러웠었다. 5년 가까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한 약을 복용해오고 있었으므로. 그럼에도 만월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신혼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리만큼 터지지 않은 생리와 몸의 이상컨디션에 의한 촉 발동으로 임신테스트기를 난생처음 사서 해보았고 코로나검사 자가키트처럼 두줄이 선명해서 순간 머리가 댕- 하고 울렸던 기억이 선연하다. 남편에게 바로 “오빠- ” 하고 테스트기를 보여주었던 그 날. 나중에 역으로 계산해보니 결혼식 바로 다음날 우릴 찾아온 만월이였다.


전 날에 먹다 남았던 생맥과 치킨이 떠올랐다. 남편과 함께 진료시작 시간인 9시만 기다리며 제일 가까운 산부인과에 갈 준비를 했었고 산부인과에서는 몇 가지 간단한 상담과 마지막 생리일을 물었고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하며 축하드린다고 했다.


신부님, 이라 불리며 결혼식 준비를 마친게 엊그제인 내게 산모님, 이란 새 호칭이 생겼다.


진료를 보며 모니터에서 아기집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보이시죠? 이게 아기집이예요. 다음 진료때 오면 난황도 보일겁니다.


잘 자리잡고 있는 작은 점같던 것. 난황이 뭔지도 잘 몰랐지만 그 말에 벅참과 감동과 놀라움이 다 뒤섞여 나온 눈물이었다. 나올 때 받았던 산모수첩과 초음파사진. 하루아침에 예비 엄마 아빠가 된 순간 세상이 한번 바뀌었다.


그럼에도 남편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직은 정신건강의학과의 약을 복용 중이며 신혼생활을 위해 타지로 올라온 나의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일 년여간 신혼을 둘이 알차게 즐기고 내년부터 아기를계획하자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인생은 역시 생각대로 되지 않는구나 싶었다.


신기하게도 그토록 나의 마음을 괴롭혀오던 그 약을 나는 산부인과에서 아기집을 보고 온 순간부터 바로 버렸다. 전날 밤에 복용하고 잤던 약….


몇 년간 상담받으며 임의로 복용을 중단했다가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한 두 달 내에 다시 내원해 상담받고 복용하던 차였는데 새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은 그날부터 나는 긴 싸움에서 이겨내고 공황에서 벗어났다.


결혼준비로 일 년 넘게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인 걸까. 마음은 조금 덜 단단했지만 체력이 튼튼해진 덕분인지 금방 찾아와 준 만월이의 존재가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요즘은 난임센터도 많이 있고 계획한다고 다되는 게 아닌 세상인지라 임신이 쉽진 않을지도 모른다 여겼던 우리 부부에겐 빨리 찾아온 기쁨이었으니.


아기집을 보기 전까지 단순히 임신 테스트기만을 보았을 때엔 솔직히 멘탈이 흔들렸었다. 이른 것 같았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싶었다.


아이들을 좋아는 했지만 단순히 좋아하는 것과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다르다. 온 신경을 그 애에게 쏟고, 일은 경력단절이 될 것이며, 나만의 삶이 아니게 될 앞으로의 일과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온전히 우리 부부의 육아방식으로 인해 결정될지도 모를 일이기에 엄청나게 거대한 파도가 덮치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수시로 활발하게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갈비뼈와 방광을 그리고 배를 톡톡 때리며 태동을 느끼게 해주는 내 아기를 얼른 만나고 싶다.


유난스럽게 키우지는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온갖 국민템을 다 살 필요도 없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멋진 엄마들이 sns에 자신의 교육방식을 공개하며 이렇게 키웠어요- 하지만 나와 우리 아기의 속도에 맞춰 잘 키우면 되지 육아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남편과 혼인 서약서를 읽을 때 말했던 “아기가 생기면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를 키우겠다”는 그 말처럼.


 처음 겪는 초보 엄마 초보 아빠 그리고 세상이 처음일 내 아기 우리 세 식구가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기다려진다. 지구에 온 걸 환영해 아가야.


곧 세상으로 나와 엄마 아빠와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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