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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26. 2023

그럼에도 너를 사랑한다고

준비되지 않은 채 부모가 되어야 하는 일은 사실 꽤나 심란했다. 속도위반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신혼은 즐기고 계획하고 가지려 했던 아기였으니까.


행복하면서도 슬프다 하면 모순이겠지만 임신호르몬을 핑계 삼아 배가 불러오고 닥쳐올 육아가 피부에 느껴지며 심란함과 걱정되는 마음에 밤마다 남편에게 그 마음을 터놓다 훌쩍이곤 했다.


안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실은 남편까지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그럼에도 남편은 씩씩하게 육아참여도 많이 할 테고 내가 나임을 잃지 않게 퇴근 후 육아 교대를 하면 예전처럼 운동도 다니라고, 친구들 만나고 놀 시간도 있을 거라고, 우리도 남들 다 하는 건데 잘 해낼 거라고 꽤나 굳건한 투로 말했다.


그 믿음직스러움에 역시 결혼 잘했어, 라며 이내 뚝 그쳐진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이며 남편 품에서 맞아 우리는 잘 해낼 거야,라고 다시 다짐하곤 했었다.


몇 년째 우울에피소드 진단을 받고 병원에 다녔던 내가 남편은 만월이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며 약을 먹지 않고 버틴 게 꽤나 기특했던 것도 같다. 한편으론 그게 나의 산전 혹은 산후 우울증으로 찾아올까 걱정하는 중인 것 같지만.


아직까진 모성애의 힘인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싶었던 나는 꼬박 열 달째 약을 먹지 않고도 내 일상을

잘 보낼 수 있었다. 10개월 내내 마음 편하게만 보낸 것은 아니지만 심박수가 급격히 올라 호흡곤란한 순간이라던지, 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에 속수무책으로 좌절하던 시간은 더 이상 내게 찾아오지 않는다. 만월이 덕에 나는 강해지고 있음을 아기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를 강하게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 겪어보지 않은 미래인데 무조건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면 담담해지는 수밖에. 결혼준비하던 작년보다도 어렵고 선택의 연속이 많았던 올해이지만 지금은 앞으로 세 식구가 함께 할 날이 기다려진다. 우리에게 찾아올 새로운 생명과 그로 인해 변하게 될 나의, 나와 남편의, 가족들의 세계가.


임신 38주에 접어드는 지금 회고록처럼 적는 이 기록은 곧 태어날 내 아기가 컸을 때, 그리고 육아를 하다 지치는 순간이 올 나에게도 다시 힘의 원동력이 되어주겠지.


오늘도 배를 쓰다듬으며 말해주었다. 예정일이 2주 남은 지금. 곧 만날 내 아기에게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한다고,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태어나달라고.


쉽지 않은 임신기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고.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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