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사진으로 처음 마주한 너의 모습을 보고 엄청 설렜어
안정기라 불리는 12주가 되기 전까진 가족과 지인들의 임신 축하를 받으면서도 내심 불안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산모들이 계류유산으로 8주 이내에 아기를 잃는다는 걸 알았기에.
임신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야기. 이른 유산은 산모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 괜스레 불안했고 주변에 너무 일찍 알린 건 아닐까, 혹시라도 아기를 잃는다면 그 후의 나는 어쩌지 싶은 걱정에 빠졌었다.
그렇기에 남편은 내게 마인드컨트롤을 시켜주곤 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의 잘못은 아니고 네가 건강해야 아기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아기를 지키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임신기 단축근무 신청이었다. 일하는 엄마들의 모성보호를 위한 좋은
제도였는데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고 회사는 이를 허용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이었다.
나는 8년째 다니고 있던 회사에 5주 차 때 임신사실을 알리고 하루 8시간 중 2시간을 제하고 출퇴근할 수 있는 임신기단축근무를 신청했었고, 덕분에 12주까지 컨디션난조와 입덧의 고통 속에서도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업무상 인사관리가 주된 업무였던 나는 매번 상사들의 스케줄관리, 인사관리, 기본적인 회사의 사이클을 조정해야 하는 총무였으며 총무라는 직함 뒤에 숨겨진 포지션 애매한 많은 잡무들을 병행해야만 했었다.
그로 인해 늘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많았고 실수하기 싫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힘을 조금 내려놓아도 되는 타당한 이유가 생겼다.
아기가 생긴 후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일하고, 스트레스받지 않고, 주말부부도 청산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직장인 괴롭힘 방지법이 생기기 이전에 한 상사의 이유 없는 악의와 폭언으로 얽힌 내게는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업무적으로 얽힌 실수에 남자 부장은 탕비실로 업무 실수를 한 당사자가 아닌 중간 관리자인 내게 폭언을 퍼부었고 내 잘못이 1퍼센트도 없이 중간관리자란 이유만으로 욕을 듣고 나와 화장실로 도망쳐 벌벌 떨며 울었던 기억.
그 일이 시발점이 되어 아기가 찾아온 달까지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약을 복용해 왔었다. 당시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퇴사를 하려 했지만 그 일이 회사에 알려지며 여러 목격자와 당사자들의 면담 및 집행부의 결정으로 상사가 퇴사하는 것으로 정리되었고, 나는 사측의 배려로 한동안 오후근무만 하면서 예전처럼 정신건강을 회복하는데 힘썼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 이제는 정말로 일을 쉬어야 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이 인천이라는 말에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을 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타지로 갈 것임을.
그렇기에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후 복직하지 않기로, 남은 연차소진 후 산전 육아휴직을 미리 사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밝혔다.
21년도부터 신설된 산전 육아휴직이 내게는 너무도 큰 신의 한 수였다. 기존에는 만삭까지 근무를 하다 출산휴가를 사용하고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코스였다면 모성보호를 위해 아기를 낳기 전부터 미리 육아휴직을 분할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회사에 휴직 시작일과 내년 퇴사일자를 계산해서 전달했다. 인수인계가 한 달 가까이 이뤄졌고 후임은 뽑지 않는다기에 남은 직원들에게 그동안 맡아왔던 일의 큰 포지션을 나누고 세부적으로 어떤 업무는 누구에게 줘야 할지 조율했다. 내 업무분담표를 본 사람들 중 몇은 이렇게 많은 걸 했었어?라고 묻기도 했는데 세세한 것까지 다 정리하고 나니 내가 봐도 많은 업무들을 갖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일찍 쉬게 된 덕분에 인천에 올라가서 자리 잡고 생활하며 주말마다 왔다 갔다 했던 신혼집에 이삿짐을 옮기고 혼인신고와 전입신고도 할 수 있었다. 낯선 타지생활이었으나 마음은 편안했다.
쉬면서 지루한 날도 많았기에 가끔 일을 너무 빨리 쉰 건 아닐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안 그러면 아기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에 자리했다. 생각이 많고 복잡했던 나에겐 편안함과 안정만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요소였다.
진료를 보고 나면 항상 산모수첩에 그날의 초음파 사진들이 붙여져 있는데 갈수록 커지는 아기집과 서서히 보이는 태아의 모습 그리고 젤리곰시절을 지나 어느덧 육안으로 팔다리가 갖춰지고 꼬리가 들어가 아기의 형태가 제법 보이기까지 그 사진들을 촤르륵 넘겨보면 제법 신기했다.
모든 순간 너는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중이구나.
해서, 초음파앨범을 구매했다. 오래오래 보관해두고 싶어서.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의 자궁 속에서 너는 이렇게 자라났어
라고 보여주기 위해.
열 달이라는 시간 동안 찍은 많은 초음파 사진들. 주수마다 변한 게 여실히 느껴지는 이 작은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네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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