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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an 22. 2024

언젠가 네가 이 글을 읽기를 바라며

삼 년 만이었다.

삼분의 일쯤은 지워져 있던 눈썹임에도 임신기간 내내 버티다 다시금 눈썹문신을 해야겠다 결심한 것이.

이제는 남편도 꽤나 육아에 진심이 되어서 나 없이도 몇 시간의 공백은 너끈했기에 아기를 맡기고 아침 일찍 버스 타러 나선 주말. 그 어느 때보다도 공기가 풋풋하게 느껴졌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본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출퇴근을 하던 팔 년 가까이, 그보다 전인 대학생 때부터 십 년이 넘게 타고 다녔던 버스였는데도 다 지나간 과거여서인지 나는 버스 노선을 열심히 체크하며 타야 할 버스를 기다렸다.


임신을 한 이후부턴 택시, 자동차가 주 이동수단이 되어 버스 탈 일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버스를 타는 것 마냥 어색하게 교통카드를 찍고 한산한 오전버스의 창가자리에 앉아 모르는 동네로 가는 길. 두 시간 남짓한 혼자만의 시간이 행복했다.


아기띠 없이, 유모차를 끌지 않고, 아기가 토하지 않을까 싶어 늘 막 입고 다녔던 옷들과 달리 아끼는 옷을 꺼내 입고 나온 순간. 나의 소박한 자유.


마음껏 꾸미고,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걸 하며 종일 침대 속에서 잠만 자기도 했던 날들은 언젠가 내 아기가 자라면 다시 돌아오겠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나이는 돌아오지 않을 텐데.


비가 오려는 건지 날은 흐렸지만 호텔 조식을 먹기 위해새벽부터 방을 나서는 설렘처럼 괜히 발걸음도 잰걸음처럼 가뿐했다.


낯선 동네의 빵가게가 이제 막 문을 열었는지 고소한 빵냄새가 짙게 흘러들어왔다. 공복의 배를 배부르게 만들어주는 버터와 밀가루가 뒤섞인 빵냄새를 맡으며 포근하고 따끈한 빵 그리고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말랑하고 부드러운 우리 아기의 살결이 저절로 떠올랐다. 지금쯤 맘마는 먹었을까. 아빠랑 뭐 하고 놀고 있을까.


잠시 곁에서 떼어두고 나왔지만 임신한 순간부터 나와 한 몸이었던, 그래서 출산 후에 잠시 꺼져버린 배와 느껴지지 않는 태동에 공허해져서 울고 말았던, 조리원에서 나온 이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곁에서 자라는 과정을 바라보던 나는 잠깐의 자유 속에서도 온 신경을 아기에게 쏟고 있었다.


삶은 그리되었다.

이제는 아기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아이 하나를 빼고서는 내가, 내 세상이 완성되지 못하는 것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실은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그 사랑의 개념이 확장되는 거라 했는데 일심동체라는 말처럼 무얼 하든 유년시절엔 가족이 떠올랐고 연애 때는 지금의 남편이 떠올랐고 지금은 내 아기가 떠오르곤 한다.


나를 꾸미고 내 것을 사고 주변에 별 관심이 없던-오로지 내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는 이제 나의 아기가 없이는 톱니바퀴 하나 돌아가지 않는다.


이 작은 아기는 울어대다가도 내가 품에 안으면 말캉하고 너무나도 작은 손바닥으로 내 옷자락을 움켜쥐고 가슴께에 고갤 파묻으며 숨을 고르고 안정을 찾으려 한다.


그럼 나는 손바닥으로 엉덩이와 등을 도닥여주며 아기를 꼭 안아준다. 오래전 엄마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눈을 마주치고 아기의 코에 내 코를 부딪히며 뽀뽀를 해주면 눈이 반달로 휘고 입은 꺄아-를 외치듯 크게 벌어지면서 소리 없는 해사한 웃음을 보여준다.


이따금 너무 귀여운 생명체에게 온몸에 뽀뽀 세례로 스킨십을 해주면 행복하다는 듯이 까르르 소리 내어 웃기도 하는데 그 한 번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헝클어진 머리로, 집에서나 막 입는 낡아빠진 옷을 입고, 여전히 새벽마다 깨서 잠에서 깰 것처럼 버둥대는 아기의 잠연장을 시켜주느라 숙면이 뭔지도 모른 채 지쳐있던 나에겐 엄청난 보상으로 작용했다.


육아를 쭉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눈이 마주치면 활짝 웃어주는 네 미소 한번.


날이 갈수록 성장하며 주먹을 꽉 쥔 채로 자기 팔을 신기한 듯 며칠 내내 들고 관찰하다가 이내 손을 써서 무언가 쥐려고 하고 자기 두 손을 맞잡고 놀다 흔들어주는 딸랑이를 잠시 움켜쥐는 그런 것.


어느 날부터 휘릭  뒤집기를 했다가 이제는 누워서 천장을 보던 시간보다 엎드려서 새로운 시각으로 노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


새벽에 두세 번씩 쪽잠 자며 수유를 하다가, 갑자기 밤에 열 시간 내리 통잠을 자는 것.


그래서 잠이 들 무렵에 열심히 오물대다 이내 퉤 뱉어내는, 그래서 항상 네 턱과 어깨 근처에 데구루루 굴러 떨어져 있는 쪽쪽이 그런 귀여움들이 모여 육아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엄마가 되려는 결심 자체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세성에 내 밥값만 해도 잘 살고 있다 여기던 내가 사람을 키워야 한다니.


육아에 정답은 없고 나의 육아는 이제 시작이나 먼 훗날에 늙어서 무덤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엄마일 테니 이제 막 움트는 아기에게 이 마음을 따스한 온기로 기억될 수 있게 애정하고 또 애정해 주어야지 다짐하게 된다.


이 사랑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나의 사랑이 너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 기억이 단단히 뿌리내려 나무가 될 때까지.


이천이십삼년 일월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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