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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14. 2024

밤을 잃은 그대에게

밤을 잃은 그대에게.


중등도우울에피소드를 진단받고 거의 사 년 가까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있지만 그러면서 생긴 수면장애로 인해 불면증 치료를 받은 지도 일 년이 넘었어요.


처음엔 하루 이틀 제대로 잠을 못 자는 것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쉬이 잠이 들지 않는 빈도는 갈수록 늘었고 정말로 너무나 피곤하지 않아 수면욕이 사라진 것 같았거든요. 대학생시절 마감을 코앞에 두고 과제를 할 때는 한창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지만 이제는 시간표가 자유롭게 짜인 대학생이 아니라 매일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인데. 수면시간이 줄어들자 아침에 독이 되었고 그로 인해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힘들어졌어요. 새벽 세네시가 돼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고 적어도 일곱 시 반까진 눈을 떠야 했기에 수면시간은 부족했고 갈수록 지쳐가는 모습이 겉으로도 드러났죠.


충분한 수면을 하지 못하다 보니 저전력 모드 배터리처럼 종일 힘이 부족한 상태로 움직였고 오늘은 집에 가자마자 자야겠어,라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퇴근 후 집으로 가면 또다시 몸은 피로한데 뇌는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기분이라 자야겠다, 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어요.


겨우 잠에 드는 나날.


불면증이 생겼음을 인지 한 건 그보다 나중이었지만 잠을 자기 힘들다고 수면 생활 패턴을 이야기하자 평소 먹는 신경안정제 계열의 약에 플러스 수면에 관련된 알약도 처방받았어요.

저녁마다 한 알씩 복용 후 신기하게도 한두 시간 지나면 졸음이 몰려왔지만 정말 억지로 잠드는 기분이라 썩 좋진 않았어요. 누군가 내 몸의 스위치를 꺼버려서 강제로 눈이 감기고 억지로 쓰러지는 기분. 그렇기에 숙면은 취할 수 없었어요. 뒤척이다가 깨고 나면 두시였고 다시 눈을 뜨면 다섯 시 무렵. 선잠을 억지로 자다 보니 가끔은 기절할 듯 쏟아지는 피로감이 심했고 아침이 되면 몸이 늘어져서 일어나기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머리도 멍했고 정신을 반쯤 두고 사는 기분이 들었어요. 분명 나는 살아있고, 숨 쉬고 있는데 이건 내가 아닌

기분.


병원에 다니는 동안 상담을 꾸준히 받으면서 약의 용량을 줄이며 몇 번의 조절기간 끝에 마침내 아침에 피로감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잠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용량을 처방받는 수준에 도달했어요. 대부분 복용 후 잠들고 있지만 이따금은 그냥 졸려서 약을 먹지 않고도 잠에 들기도 해요. 요새의 저는 그런 식으로 살고 있어요.

금요일 저녁엔 부러 먹지 않은 날도 있었어요. 약에 너무 의존하기도 싫었고 어차피 다음날은 주말이니까 약 안 먹고 밤새면 그냥 그러다가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이 컸거든요. 특히, 지난여름에 유독 수면장애가 심각했는데 그로 인해 우울감은 더 커졌어요.


생각이 많으면 잠에 들지 못한다는 말처럼, 수면장애로 잠들지 못하는 밤엔 무수한 생각이 유영했고 어둠으로 물든 방이 이내 동터오는 아침에 빛을 받아 밝아져 오면 그때까지도 책상에 앉아 골몰하다가 우울해졌어요. 내 안에는 왜 이리도 슬픔과 우울감이 가득한 건지. 혼자 노트에 우울한 감성을 끄적거리기도 하고 신경숙 작가의 <깊은 슬픔>이라는 제일 좋아하는 책을 필사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하고 억지로 침대에 누워서 한 시간 내내 눈만 감고 뒤척이다가 다시 일어나 책상에 앉는 날도 많았었어요.

시시각각 남색에서 주홍으로 물드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무너지는 일.
어제를 기억하다 한 달 전을 추억하고 지난해를 회상하다 가라앉는 일.
습관처럼 토해지는 한숨을 틈틈이 내뱉으며 폐부를 비워내는 일.
새벽 여섯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바라보다가 이내 매트리스로 뛰어드는 일.
부유하는 잡념을 없애려 노력하다 남들이 깨는 시각 잠이 드는 일.
꿈속에서 헤매는 일.
한낮과 한밤이 뒤바뀐 주말.
태연한 척해도 안으로는 계속 곪아가는 날.

작년 여름에 적었던 메모인데 이 글을 적었을 때의 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져요. 내가 나에게 위로해주고 싶은 날에 이렇게 적어보아요. 나와 닮아있는 당신 밤을 잃은 그대에게, 틈틈이 행복하라고.


*해당 내용은 현재는 극복한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 및 불면증을 겪던 시절에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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