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무인 날엔 대게, 알람 소리에 눈을 뜬 뒤 매트리스 위에 가만히 누워서 눈을 끔뻑이곤 합니다. 그러면 뭉쳐있는 승모근과, 뻐근함이 남아있는 어깻죽지를 타고
여전한 피로가 손과 발을 그리고 몸통을 옭아매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인들에게 포박당한 걸리버처럼 뒤척이지 못한 채 가만히 눈을 끔뻑이며 시계를 확인합니다. 아침일 때도 있고, 정오일 때도 있고, 드물게 한 낮일 때도 있습니다.
졸리면 다시 눈을 그대로 감은 채 미처 깨지 못한 잠에 취하고 맙니다. 애써 일어나려 애쓰지 않는 휴일입니다. 졸리지 않을 때엔, 심장에 가만히 손을 얹어봅니다. 언제나 눈을 뜨면 심장에서 쿵쿵거리는 울림이 심해서, 꼭 공연장에서 엠프를 통해 울리는 전율이 몸을 타고 쿵쿵 느껴지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콩콩 뛰는 게 아니라 쿵쿵 뛰면서 심장박동이 가열하게 뛰고 있습니다. 마라톤을 한 것처럼. 쉼 없이 달리다가 이제야 멈춰 선 사람처럼. 오랜 시간 어딘가를 떠돌다가 이제야 자리에 앉은 것처럼.
근 일 년여 만에 오후 네시까지 자고 일어난 하루입니다. 모처럼 쓴 연차였는데 잠을 자느라 하루가 다 지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그저 몸이 고단하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부유했습니다. 가만히 집 안에서 하루를 보내기만 해도 에너지는 금세 소모되었는지 남은 시간 종일 느릿느릿했습니다.
답은 없이 그저 문제만이 맴도는 하루. 막연하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앞날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되지도 않고, 기대하고 싶지도 않아졌습니다. 우울했었구나,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그저 무기력했는데 나가서 바람을 쐬고 싶어서 밤중에 한 바퀴 산책을 돌고 왔는데, 왜 그래야만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나는 우울했었구나.
나에게 가장 알맞은 위로가 무얼까 골몰해봅니다. 휴식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가만히 혼자 그저 마음 가는 데로 하루를 유유자적 낭비해보는 일.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자책하기보다 푹 쉬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 답답해졌을 땐 밤에 잠깐 나가 바깥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산책하고 돌아오는 일.
일상의 쉼표가 필요했습니다.
글도 가끔 애증이 되기도 합니다. 휴일의 취미였다가 그저 기록이었다가 위안이기도 하다가 이따금 버킷리스트 안에 들어있는 꿈이 되기도 하는데 닿지 않을 먼 이야기인지 싶어 글쓰기에 대가를 바라지 않았음에도 이기적으로 자꾸만 무언가 욕심을 내게 됩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많은데 읽는 사람들은 줄어든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소재가 있고, 글을 쓰는 이가 쓰고 싶은 소재가 있는데 둘의 교집합을 찾는 일을 잘 해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새로운 단편 소설을 쓰고 싶은데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어서, 어제는 푹 쉬기만 했으니 오늘은 걷기라도 많이 하자 싶어서 오랜만에 옆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를 찾아 오전부터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카페 한 구석에 앉아 글을 씁니다. 짓다 만 짧은 단편이 있지만 장편소설도 하나 써보고 싶은데 소재를 택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 한 자도 새로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싶은데 도저히 생각나는 이야기가 없을 때엔, 다른 사람들의 감성에서 도움을 찾곤 합니다. 감성적인 사진, 서평, 저마다의 기록들을 보며 다른 사람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찾아보고 그러다가 영감을 얻곤 합니다.
오늘의 위로는 혼자 카페에 와서 쉬는 지금인 것 같습니다. 방에서 종일 있었으니 하루 정도는 혼자 걸어 나와 색다른 장소에서 오전을 보내는 것도 여유롭고 괜찮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 오픈 시간대엔 사람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한적한 곳에 있는, 유동인구가 적은 골목에 있는 카페라서 더욱 여유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글을 다 적은 이후엔 옆의 꽃가게가 문을 열면 식물을 구경하러 가 볼 계획입니다. 꽃 말고, 작은 화분을 사서 식물을 잘 길러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끔은 힘들때 이기려하지 않고 그냥 진다고 하는 가수 아이유의 말처럼 하루쯤은 그저 마음 놓고 쉴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만히 놔두는 게 가장 알맞은 위로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할 때처럼 머리를 굴리고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나태해져도 괜찮은 나만의 위로법. 일상의 쉼표입니다. 계속 산소를 머금고 살아가기 위해선 더 큰 심호흡이 필요한 날도 있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