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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23. 2024

나의 밤에 안녕을 빌어줘요

6평 남짓한 내 방 안에서 가장 애정 하는 것 중 하나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푹신한 베개.


잠을 자기 위해선 침대나 이부자리에 꼭 베개가 있어야겠죠. 제 침대엔 총 세 개의 베개와 말랑한 등받이용 식빵 모양의 쿠션이 하나 있어요. 어떤 날에는 쿠션을 베고 잠들기도 하고, 대부분은 복원력이 좋은 마이크로화이바 소재의 베개를 베고 잠들어요.


베개는 밤의 안녕을 빌어주는, 숙면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촉감이 부들부들한 차렵이불도, 아직까진 보온을 위해 덮어둔 따뜻한 털 매트도 다 좋지만 머리를 댈 수 있는 베개가 편해야 잠에 잘 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저처럼 불면증 겪고 있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으면 쉽게 잠에 들 수 없어요. 이 경우는 내가 잠에 들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수면장애이기 때문에 정신은 멀쩡하고 육체는 너무 피로해서 때론 고통스러울 때도 있어요. 잠이 오지 않아 드는 많은 사념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나 원망, 불안정한 현재에 대한 고민도 들어있어요.


아직도 공황을 겪고 안녕하지 못한 밤들을 보내며 다음날 더욱 힘들게 바닥난 체력으로 하루를 견디는 자신이 안타까울 때도 있죠.


그러다 보니 잠을 자는 내 작은 침대의 베개 하나까지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예전엔 오래되고 솜이 뭉쳐진 낮은 베개를 주로 쓰다가, 마음에 드는 침구를 새로 맞추면서 베개를 새로 장만했었는데 한번 술에 잔뜩 취한 채 집에 와서 베개에 토하는 바람에 버렸다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어요.

그 후엔 흔히 마약 베개, 꿀잠 베개로 불리는 제품도 사용해봤었는데 저에겐 다 소용없었어요. 개개인에게 맞는 베개는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여름쯤 베개와 커버를 새로 구매했었는데 그때 베개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배웠어요. 그냥 폴리 솜도 있고, 복원력이 좋은 마이크로화이바 솜도 있고, 머리와 목뼈의 높낮이를 알맞게 연구해서 만든 메모리폼도 있고, 푹신한 구스 베개나 엄청 낮은 경추베개도 있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게 맞는 베개를 사용하는 것일 텐데 저는 단단한 솜보단 푹신한 솜이 좋아서 마이크로 베개를 구매했어요.

지금 제 침대에 올려진 베개는 다 솜이 다른데, 하나는 오래전부터 사용해서 솜이 뭉친 낮고 모양도 잘 안 잡히는 배게, 두 번째는 앞서 말한 마이크로 배게 마지막으론 되게 솜이 통통하게 차있고 복원력은 좋지만 다른 베개들에 비해 너무 높아가지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세 번째 베개가 있어요.


침대에 기대어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할 때 등받이용으로 자주 쓰곤 하지만 그 외에도 머리맡에 베개들이 많으면 꼭 좋은 꿈을 꾸게 해 줄 것 같아서 욕심부려서 작은 침대에 베개를 세 개나 놔두었어요.

보통 밤이 되면 침대에 엄마와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졸릴 때쯤에 엄마가 안방으로 가곤 하는데 엄마를 위해서라도 적어도 베개는 두 개 이상 필요하더라고요.

책상 옆 나의 침대 그리고 베개들

기분 전환으로 가끔은 패브릭 커버도 바꿔서 구매하는데 봄맞이용으로 밝은 색의 커버를 구매해서 씌웠더니 또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이제는 알맞게 마음에 드는 것이 늘다 보니 가구 배치를 바꿔볼까 고민 중이에요. 익숙해지면 무료해지기 마련이니까요. 환기가 때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하나 방구석구석 바꿔가는 재미도 익숙해진 방을 새롭게 변화시켜서 오는 기분 좋은 설렘을 위해서예요.


그럼에도 딱 하나 지키고자 하는 것은 sns에 많이 나오는 인테리어들을 따라 하면 제 취향이 무너질 수 있으니 나다운 공간을 만들자, 는 거예요. 대부분의 집 꾸미기 인테리어들의 배치나 소품이 비슷한 게 많던데 그렇다 보면 내 취향을 잃고 금방 질리게 될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도 저는 조금씩 있는 것에서 애정을 좀 더 채워주며 좋아하는 방의 소품들을 하나씩 소개해볼게요.


아마, 우울하거나 채워지지 않는 감정들을 저는 이렇게 소비로 풀고 있는지도 몰라요. 얼마 전에 진지하게 고민해봤는데 전 뭔가에 허기질 때 쇼핑을 하더라고요. 만족스럽다고 여기지 않으니 자꾸만 새로운 것을 원하고, 방을 더 채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만 해도 공황이 다시 도져서 오전 반차를 내곤 계속 진정되지 않는 몸을 둥글게 말아 침대 안에만 있었어요. 여길 벗어나면 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침대만이 내 안전지대라서 침대 밖을 도저히 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대로 점심 무렵까지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앓았어요.


내내 안녕하지 못한 밤들, 안녕하지 못한 아침들 그리고 좋은 꿈을 꾸고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는 날들이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해요.


그리고 이렇게 공황이 오면 무기력해지고, 그저 감정도 생각도 없는 바보가 된 것 같아요. 웃을 일도 없고, 입맛도 떨어지고, 움직일 힘도 겨우 짜내서 생활하게 되거든요. 감정의 밑바닥까지 치닫은 우울감이 어디까지 더 차고 내려가려는 건지 주말에 집 근처 산책을 할 때조차 우울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자꾸만 숙면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수면유도제 없이 잠드는 날도 많긴 하지만 여전히 그렇지 못한 날이 많고, 아침마다 무력해져서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게 힘이 조금 들어요.


잠이 보약이다, 라는 흔한 말이 제겐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밤의 안녕을 빌어주는 베개는 그래서 제겐 소중한 것이에요. 꿈을 꾸지 않고 그저 깊이 잠을 잘 수 있는 마법 베개가 있으면 좋겠어요. 오늘 밤에도 무사히 제가 잠에 들 수 있도록. 그리고 아침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fin.




해당 에세이는 과거 불면증과 중등도우울에피소드를 앓던 당시에 작성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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