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안의 불안과 우울에 대하여
요즈음 저녁마다 방에 들어와 하는 일은, 형광등을 끄고 방안에 있는 두 개의 스탠드를 켜 조금은 낮은 조도의 안정감을 주는 주광색 불빛에 기대어 글을 쓰거나, 노래를 들으며 인터넷 하기 혹은 영화나 드라마 다시 보기입니다.
방 안에서 그러고 있노라면 시끄러운 먼 곳에서 아득히 떨어진 공간에 있는 듯, 조용해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독서도 다시 꾸준히 해보려고 오늘은 독립서점에 방문해서 책도 몇 권 골라왔는데 책마다 작가의 성향이 짙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이런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출판한 얇고 작은 도서들. 언젠가 그 가운데 제가 쓴 이야기도 출판해서 꽂혀있기를 바라며 고심 끝에 데려온 책 두어 권을 나란히 책상에 늘어놨습니다.
표지를 가만히 바라보다 슬쩍 들여다본 내지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수다스럽게 터져 나올 듯싶습니다.
최근엔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은데, 사월이 되면서 우울감이 조금 심해진 듯 해 책상에 있을 때면 하루에 한 번, 종이 인센스에 불을 피워 향을 방에 퍼트리곤 합니다.
심신안정에 도움을 주고 공기정화를 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아이템인데 단점은 라이터나 점화기를 사용해 향초처럼 향을 피워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이 무서워서 여태 구입하고도 일 년 간 쓰지 않다가 문득 사용하고 싶어져 인터넷으로 캔들 점화용 미니 점화기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처음엔 아빠의 라이터를 사용해 켜보려고 했는데 라이터를 제대로 켜는 것도 어려워서 우여곡절 끝에 겨우 불을 붙였던 얼마 전이 생각납니다. 부싯돌의 방식으로 열심히 엄지손가락을 굴려 켜야 하는 라이터였는데 몇 번의 실패 끝에야 불을 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아니, 흡연자들은 담배 피우려면 매번 이렇게 라이터를 켜야 할 텐데 손가락 안 아픈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라이터도 켜는 방식이 다양하더군요.
어쨌든, 편리성을 위해 구매한 점화기는 생각보다 화력이 좋고 잠금장치도 있어서 안전성도 갖춘 듯합니다.
딸깍- 소리가 나며 점화 버튼을 누르면 촛불처럼 일렁대는 불꽃이 올라옵니다. 불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살짝 놀랬지만 화력을 최저로 놓고 켜보니 그럭저럭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만족합니다.
공간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인센스 제품 중 “파피에르 다르메니”라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 중인데 쿠폰북 형식으로 작게 소분되어있어서 작은 방에서 사용하기에도 적당합니다. 근 이 주 동안 밤이 되면 종이 인센스 한 장을 찢어 불꽃을 대고 종이로 불이 옮겨 붙은 순간 얼른 후 하고 불을 껐습니다.
촛불을 불 듯 후- 불을 끄고 불연소 트레이에 인센스를 올려두면 작은 방을 가득 채우는 잔향이 퍼져나가는데 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들숨 날숨으로 호흡하다 보면 긴장이 완화되는 것 같아 우울감이 심한 요즘 가장 도움이 되는 제품입니다.
타고 남은 재는 트레이에 모여집니다.
각자 다른 모양으로 우글우글 구겨진 작은 잿덩이들. 나쁜 마음을 그 안에 모아 두고 불꽃에 태우듯 재로 태워버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저 재로 남은 그것이 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간단하지 않은 고민들을 간단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기를 바라는 때도 있습니다.
요즘 제 심장은 종일 쿵쿵 거리며 불안정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약도 다 먹어서 다시 상담을 받았는데 선생님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가 느끼는 것보다 실제론 더 큰 우울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크게 느끼지 않으실 겁니다, 라는 언제나 듣는 특유의 멘트와 함께 상담은 끝이 납니다. 처음 병원에 가는 건 어려웠지만 계속 꾸준히 내담자의 입장에서 다니다 보면 가장 솔직하게 속의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언제나 자리에 앉으면 이번 주는 어떠셨냐는 질문이 가장 먼저 들어옵니다. 그러면 저는 가장 큰 우울감을 느낀 이야기와 보다 안정되게 지나갔던 지난날에 대하여 입술을 열게 됩니다.
기억을 복기하며 기분을, 감정을 이야기하는데 스스로도 본인에게 확신이 없어 언제나 -했던 것 같아요.라고 제삼자의 이야기를 하듯 말하곤 합니다.
그런 식으로 십여분 동안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제 이야기를 하고 나면 조금 괜찮아집니다.
아무래도 저를 고쳐주는 의사 선생님이기 때문일까요.
가장 처음 갔던 병원에선 내담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는데도 무섭다는 제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고 비웃듯이 옷을 갈아입는데 왜 무섭죠? 라며 되물어 사람을 벙찌게 만들었는데 다행히 제게 두 번째로 골라서 방문한 병원은 거의 이년 가까이 계속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힘을 주는 편입니다.
그래서 힘들다고 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으라고, 어렵지 않다고 권해주곤 합니다.
이런 게 이상하다고 낯설다고 느껴지는 세상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힘들었겠다며 공감이나 이해를 해주는 혹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주는 지금이 고마울 뿐입니다.
저 조차도 학생 때는 주변 시선이 겁이 나서 숨이 막힐 듯 무서워도 병원에는 가지 말아야지 했던 사람이니까요.
특히나 요즘 들어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 되면 공황이나 불안이 더욱 심해져서 아침이 힘이 들곤 합니다.
십팔년도쯤에도 이런 상황이 비슷했고 작년 여름에도 깜빡깜빡 잊는 게 잦아 버스 정류장도 잘못 내리거나 현기증을 느끼던 때가 있었는데 어떤 식으로든 몸은 조금 고장 난 것 같다고 알려오고 있었나봅니다.
주변에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역시 퇴사를 해야 하는 거라고, 퇴사하면 나을 거라고 그러는데 머리로는 저도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회사 때문인지도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제가 뭐든지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마 진작에 관두고 쉬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계속 회사에서 일을 하겠다고 선택한 건 제 자신이고 지금의 이 안정된 삶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기에 버티고 버티면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중입니다.
왜 아픈 건지, 왜 힘든 건지 모르겠고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될지, 그런 건 굳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러다 말겠지. 지금만 생각하자 싶어서 그저 돈을 벌며 일을 하고, 주말엔 가만히 쉬고, 그저 일과 휴식을 반복하며 워라벨을 실천하는 중입니다.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살고는 있습니다.
때론 타다 남은 재처럼 제 안의 문제들이 가볍게 사그라들기를, 쉬이 사라지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글은 쓰고 싶어서 또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습니다. 내일이 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노래를 듣고, 드라마를 보고, 새로 산 책을 골라 읽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오지 않는 잠과 그다음 날의 아침을 생각하며 침대에 몸을 뉘이겠죠.
단순히 공황을 앓고 있는 한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럴까요. 누구나 힘이 들어도 이야기를 안 하는 것뿐 마냥 행복하게만 사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여깁니다.
다만 제 안에는 저만 있어서, 때로는 친구들에게도 속 깊은 고민을 다 털어놓지는 못하겠습니다. 그저 지금 웃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내다 헤어져도 충분한 사람들이기에 가장 깊게 침전된 속마음은 이렇게 글로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당 글은 중등도우울에피소드와 불면증을 겪던 당시에 작성한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