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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15. 2024

안녕, 무명씨

무명 씨에게.

안녕한가요. 요즘 그대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경제적인 문제일지도, 애정에 관한 통증일지도, 막연히 그려지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은 건강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신적인 공황상태의 지속. 제 불안은 그대의 불안과 얼마나 다를지 모르겠지만, 온종일 가슴은 쿵쿵거리고, 숨은 이따금 벅차 올 것 같이 과호흡이 오기도 하고, 명치 조금 윗 부근이 차가운 불덩이를 삼킨 듯 끓어오르기도 해요. 밤이 되면 가끔은 감당할 수 없어서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울다가 지치기도 하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저처럼 공황으로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요. 분명 저만 가지고 있는 고통은 아닐 거예요.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황 혹은 불안장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방송에 노출되는 사람들 또한 공황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하거든요.


티비 혹은 글로 담담히 자신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지인들의 눈에도 조심스레 고백을 하는 내 모습도 저리 침착할까 싶어요. 왜 비행기를 오래 타지 못하는건지, 자꾸만 한숨을 내쉬는건지, 운전은 왜 하지 않는지, 수면장애로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 많은 의문점이 공황을 앓고있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터놓으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지게 되거든요.


언제까지 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며 상담을 받아야 하고, 나의 미래가 어떨지 그런 고민들은 그대의 고민에 비해 상대적이라서 사소할지도, 혹은 제 고민이 더 큰 문제처럼 여기지도 몰라요.


머리로는 쉬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한창 심하게 아파서 며칠을 앓고, 간헐적으로 공황상태가 올 때 저는 일을 관두고 스스로를 돌봤어야 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근데, 알면서도 그러지 못한 이유는 그 이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죠. 몰론, 회사 사람들이 붙잡아준 덕에 여태까지 사회생활을 잘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따금 그때 일을 관두고 정신적인 요양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해요. 지금보단 호전되지 않았을까. 종일 불안감이 가지시지 않는건 생각보다 더 끔찍하거든요. 아프면 한없이 유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삶과 죽음 사이엔 선택의 순간들이 존재하고 미래로 가는 이정표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여전히 눈을 감고 걷는 기분이에요. 막막한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 기분. 그 통로의 끝에서 언제 빛을 볼 지 모르는 채로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야 하는 삶. 쫓기듯이 살아온 건 아니지만 나태하게 살아왔다고도 생각하진 않아요. 가장 흔하디 흔한 20대 A씨인 지금 제 이야기는 어쩌면 이 글을 읽을 그대의 거울일지도 모르겠어요.


관두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의 나는 무얼 할 수 있을지. 언제나 제 나이 때에 맞게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이런 것들을 쉬지 않고 가장 평범한 루트를 타고 자라왔거든요. 휴학 한 번 할까 고민한 적이 없던 이유도 마찬가지였어요. 휴학을 하면서 그냥 허송세월 허비할 것 같았거든요.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엔 아까웠고 타인들에 비해 뒤쳐질까 봐 두려웠어요. 제겐 인생을 걸 만큼의 큰 목표나 포부가 없었기에 나와 다른 시간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혹은 더 여유롭게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긴 해요.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요.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 서른이 가까워진 지금 그게 중요했구나, 새삼 느껴지네요. 나를 돌보고, 나에게 집중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어요. 혼자 짐을 싸서 타지로 여행 가고, 숙소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혼자 돌아다니고.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었는데 여전히 이루지 못한 이야기예요. 혼자였으면 싶다가도 덜컥 외로워질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저마다 갖고 있는 두려움은 작은 싹을 움터서 나를 잡아먹을 만큼 커지기도 하더군요. 아직도 때때로 내 안의 불안과 싸우고 있어요. 걱정과, 고민을 잠시 선을 자르듯 잊은 채 그저 가만히 행복하던 순간도 있지만 감정은 복합적이어서 단 하나의 감정에 머무르지 못하고 금세 환기되곤 해요.


살아가면서 후회 없도록 하자, 라는 작은 신념이 있어요. 무엇을 하든 일련의 경험들을 거치면서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만큼 충분히 숙고하고 행동해야겠다는 의미기도 하지요.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만 해요. 지금에 충실하고, 사소한 것에서라도 그대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하루를 보내길 바라요. 오늘의 안녕을 빕니다.



*해당 글은 현재는 극복한 중등도우울 에피소드 및 불면증을 겪었던 당시에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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