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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by 에그 머니 나

2호선은 오늘도 평화롭다. 열시가 다되어가는 시간, 각자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도 지하철엔 사람이 북적인다. 비어있는 한 두 자리 외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 앞니가 하나 빠진 아이의 이 같다. 가을이 와야 할 날짜에도 물러서지 않는 폭염에 지친 이들은 무거운 어깨를 늘어트리며 기대어 있거나, 휘청거리거나,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창을 바라보고 있다. 잠시 잠든 이들의 머리가 지하철의 출발과 멈춤이 오가는 장단에 맞춰 이리 저리 흔들린다. 오래 햇빛을 받지 못한 콩나물 같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기도 하다.

새하얀 프릴 블라우스를 입은 아주머니가 가방에서 종이를 한 웅큼 꺼내 크게 외치기 시작한다. “예수님 믿으세요! 믿으셔야 합니다! 학생, 이거 받아요, 아멘. 아저씨! 일어나보세요, 주님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연신 믿음을 외치던 아줌마는 결국 얼굴이 시뻘건 아저씨를에게 한 소리 듣고 만다. 멍울지어 있던 화가 얼굴까지 올라온 것인지,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는 탓인지는 모르지만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색을 띈 채 소리친다. “염병, 믿긴 뭘 믿어! 믿으면 빚도 갑아주냐? 세상에 믿을 건 뭣도 없어!” 지하철을 다시 고요해진다. 끼이익,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열차는 멈춘다. 아줌마와 아저씨가 한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서로를 한껏 째려보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은 아줌마가 지하철을 내리며 끝난다. 아저씨는 무엇도 잡지 않은 채 비틀거린다. 열차가 멈추고, 다시 출발하고. 또 얼마 안 가 멈추고 출발할 때 마다 아저씨는 탭댄스를 춘다. 아저씨, 뭐라도 잡으세요. 뭐라도요… 내 눈은 아저씨에게 닿지 않을 말을 건낸다. 2호선은 오늘도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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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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