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눈이 오는 날을 좋아했다. 엄마에게는 눈사람을 만들 수 있어서라고 했지만, 실은 눈이 오면 엄마가 일찍 퇴근을 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회사 바로 앞에는 가파른 언덕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이런 언덕배기에 회사를 지은 누군가를 욕하다 보면 올라갈 수 있는 기울기였지만 눈이 오면 스키나 보드 따위의 장비 없이는 꼼짝 할 수 없는 빙산으로 변했다. 그래서 엄마의 회사 사람들은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빠르게 짐을 챙겼다고 한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엄마가 와 있는 것이 어색해 괜히 몸을 베베 꼬우면서도, 엄마가 끓여준 꼬치 어묵탕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일은 눈이 내리면서 두고 간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날에 엄마는 꼭 거품이 소복한 맥주를 마셨는데, 우리의 저녁 식사에서 유일하게 엄마와 내가 공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을 만큼 맛있느냐는 물음에 엄마는 나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을 만큼 쓰다고 했다. 그리곤 그런 말을 덧붙였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라고. 아침에 하늘에서 눈송이가 떨어질 때 우와! 가 아니라 아...라는 탄식어가 나올 때쯤에, 어떤 눈사람을 만들지? 가 아닌 어떻게 출근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알게 될 거라고. 그때의 나는 취기에 빨라진 엄마의 말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보다 키가 조금 더 컸을 때 이해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백여 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만일을 대비해 맞춰 놓은 마지막 알람을 듣고 겨우 몸을 일으킨 나는 소리도 없이 쌓여 있는 창 밖의 하얀 세상을 보며 생각하고 말았다. 아, 어떻게 출근하지? 그리고 비로소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조금 서러워졌다. 빙판길에 미끄러져서는 안 되는 정도의 체면은 갖춘 터라, 필사적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갓 쌓인 눈을 훼방하며 걸어야 했다. 나를 선두로 내가 개척한 길을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 줄을 섰고, 우리는 낭만을 집에 두고 온 채 벌벌 떨며 종종 걸었다.
눈이 내리며 두고 간 오늘의 선물은 열차 지연과 지각이었고, 그 탓에 점심시간에서야 엄마에게서 온 카톡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용한 우리의 카톡 방에는 엉성하게 빚어진 눈사람 하나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여전히 낭만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소리 내어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따뜻한 어묵 국물 한 컵과도 같은 엄마의 문자 메시지에 나는 잠시, 눈을 그저 눈으로 즐길 수 있었던 나이로 돌아갔다. 여전히 퇴근을 어떻게 할지는 걱정이지만, 집에 가는 길에 엄마를 닮은 눈사람을 만들어 보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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