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행복 그리고 나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르바이트와 과제들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여자친구와 친구들 선배들과 함께라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들이 즐거웠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즐거웠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행복했던 나 자신을 보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일단 삶의 의지와 목표를 잊어가고 있었다. 처음과 달리 여자친구와 다시 만나며 주변 사람들과 관계도 좋아지며 1학년 때로 돌아간 것처럼 노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업이나 아르바이트는 빠질 수 없어서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처음처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중간고사를 제법 성적이 좋아서 그랬나 기말고사에 대한 걱정도 딱히 없었고 그래서인지 공부는 했지만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디자인 작업도 팀프로젝트가 아니라 개인이었다면 아마 열심히 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작업 역시 어느 순간부터 손을 놓고 쉬고 있었다.
나중에 디자인 최종 작업물을 보니 이별하고 아팠을 때와 비교해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제일 큰 차이점이라면 디자인에 영혼이 없었다. 물론 그림체나 스타일 자체는 중간 과제보다 더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간 과제, 내 작품에서 느꼈었던 그 느낌이 기말 최종 과제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사람은 어리석은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행복함에 절박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때 그 감정들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했는데 조금 쉬어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고민에 빠진 나에게 여자친구는 괜찮다며 위로해 줬다. 고마웠지만 불안했다. 이제 꿈의 방향성도 어느 정도 정했고 그동안 잘 달려오고 있었는데 이렇게 잠시 쉬어가는 게 맞는지 불안했다. 하지만 불안하면서도 즐거웠다. 그동안 쉬지 않고 거의 1년 동안 달려왔기 때문이다. 아니 군대에서부터 생각해 보면 3년 동안인 것 같다.
예술가, 연예인, 사업가 등 성공해서 유명해진 사람들을 보면 마냥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성공의 기준이 우리와 달라서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 성공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에 도달하기 전보다 초조해 보이고 불안해 보인다. 남들 눈에는 부럽고 행복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왜일까?
내가 돈을 바라보면서 공부하지 않는 이유. 부자가 인생에 목표가 아닌 이유랑 비슷한 것 같다. 사람은 목표를 이루게 된다면 거기서 두 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나는 더 성공할 수 있을까? 나머지 하나는 지금 위치에서 내려갈 수 없어.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잃을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면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그 목표가 돈이나 지위라면 그래서 더 불안할 것이고 그래서 나는 돈이나 지위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불안한 이유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행복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공부나 자기 계발은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친구들이나 선배들과도 만나고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 다 가져가는 선에서 적절히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함을 포기한다면 전처럼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감이라는 달콤함을 맛보니 행복함을 잃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는 나태해졌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다.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해서라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특히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돈, 사랑, 우정. 나는 지금 매우 행복하다. 하지만 행복한 삶이 나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가가 되기 위하여 나는 지금 이 행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내가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