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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Sep 12. 2024

나는 정말 옷을 좋아하고 있어?

#58 패션과 예술에 대한 회의감

친구들보다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옷을 좋아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 보다 내가 좋아하는 옷은 어떤 옷인지 빨리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개성 있는 옷을 입게 되었다. 운 좋게 대학교도 관련 과로 가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 나는 패션을 전공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정말 옷을 좋아하고 있어?”          



4개월 전만 하더라도 쉽게 대답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냥 옷이 너무 좋았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모르는 사람들이 멋있다고 칭찬해 주고 어디서 구매했는지 물어보고 친구들이 나에게 옷을 잘 입는다고 말해주며 같이 쇼핑을 가자고 이야기하는 그런 삶이 너무 행복했었다. 우연한 계기로 옷을 좋아하게 되었고 덕분에 옷이라는 물건으로 많은 인연을 만났다.        


   

처음에는 옷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다음에는 노력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이다. 운이 좋게 나에게 패션이 다가와 주었고 또 운이 좋아서 패션 덕분에 좋은 인연들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옷을 잘 만들지 못하는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은 다 핑계였다. 디자인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고 옷을 만들기가 싫었다. 다른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노력할 때 나는 좋은 옷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지만 옷을 만들며 노력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나는 옷을 완성할 수 없었다. 이번 학기 수업은 다음 학기인 졸업 전시회 수업 바로 전 수업이라 정말 중요한 수업인데도 말이다.         


 

나는 스스로 합리화했고 계속 변명했던 것 같다. 단지 노력이 부족했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좋은 결과물들은 운이 좋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나에게 패션은 등을 돌렸나 보다. 내 최근 작업물들은 예전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나는 그저 게으른 사람인가? 그동안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미치도록 노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운 좋게 좋은 결과물들이 계속 나타나서 미치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물이 좋아지지 않아서일까? 나에게 있어서 그저 재밌었던 패션이 요즘은 지루한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옷이 싫어지며 옷에서 등을 돌리게 되었고 옷 덕분에 생겼던 많은 인연들도 나에게 등을 돌렸다. 처음에는 단지 운이 좋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은 다 나의 자만이었고 내 탓이었던 것 같다.      


    

나는 좋은 옷을 만들고 싶었다. 옷은 단지 소모품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물건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옷이라는 물건을 통해 예술에 가까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옷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옷은 그저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입을 수 있는 옷에 집착하고 좋은 아이디어보다는 규정화된 무언가를 사람들은 원한다. 옷은 결국 누군가 입어야 하고 구매해야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옷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졸업학기를 남겨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은 무엇을 위해서인지 나는 아직도 옷을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옷에서 등을 돌린 것인지 옷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인지. 나는 계속 앞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이제는 다른 길을 찾을 시간이 온 것인지. 나의 청춘이라는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의미 없는 날들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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