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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와 알렉산더 Jun 20. 2024

절망이 절망하는 하루

첫 번째

손목시계의 손목에도

손목시계가 있더라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말이다

이를테면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도 있겠지


분명한 건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

내가 거쳐온 생들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울린 업보일지도 모르지


좌절에게 편지를 써봤자

답장의 필체는 좌절의 그것일 텐데

그런 답장이라도 받겠다고

수십 장의 편지나 쓰고 앉아있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말이다

이를테면


절망이 절망하는 하루도 있겠지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언젠가 기어코 그날이 온다면은


손목시계의 손목시계가 새벽을 데려올 때


잠이 자는 잠에서

꿈이 꾸는 꿈을 빼돌려

내 볼을 타고 흘러 내리는

어느 커다란 눈동자에게

전화를 걸겠지


전화를 걸어 말하겠지


날이 새면은 국경을 넘자고

아무도 우리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도 아무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느 머나먼 고장에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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