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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와 알렉산더 Dec 11. 2024

쌍화차

스물일곱 번째

늙은 할머니가 사는

할머니보다도 늙은 집에 가면

할머니는 손녀를 위해 쌍화차를 내오셨다


부엌에서부터 특유의 한약향이 번지면

나는 읽던 소설책을 덮고 부엌에 갔고

언젠가부터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할머니는

내가 부엌에 있는 줄도 모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할머니가 내 나이였을 시절에 듣던

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찬장에서 가장 아끼는 찻잔을 꺼내셨다


지난달보다 전혀 줄지 않은 쌍화차를 보며

나는 여느 때처럼 잔소리를 했고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미소를 보이셨다


고마워


황송하게 쌍화차를 받아 마시고

나는 여느 때처럼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할머니는 믹스커피 같은 거나 홀짝이다가

저녁에 먹을 밥과

손녀 용돈이 될 고구마 농사와

손녀 기억이 될 미소를

지으셨다


가끔 인사동에 들러

다른 손녀의 할머니일 할머니의 찻집을 찾는다

쌍화차의 맛은 비슷한데

분명 뭔가가 부족하다


인사동에서 남의 할머니가 해준 쌍화차를 마시며

나는 그 쌍화차에 결여된 무언가를 생각한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쓰지만 따뜻한 것들을 생각한다

모든 상실을 생각한다

할머니를 생각한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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