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위력 앞에 조심스러운 마음에 관하여
# 이 기자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어머니께서 나에게 기자가 되기를 권하셨다.
어쩌면 중학교 3학년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꽤 아득한 학창 시절.
어머니께서는 기자라는 직업을 권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동안 나를 "이 기자"라고 부르셨다.
어머니의 말씀에 개의치 않았다.
그 또래 학생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오늘 오전에 기사를 한 편 썼다.
나는 정말 "이 기자"가 되었다.
며칠 전에 모 교수에게 문자를 받았다.
"이 기자님"으로 시작하는 문자였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 나는 또 기사를 쓸 것이다.
재작년 8월에 언론대학원에 편입했다.
나는 엉뚱하게도 드라마 PD가 되고 싶다고 자기소개서에 적었다.
사회학과 석사과정 4학기가 끝나가는 시점.
논문을 완성할 엄두는 나지 않았고 대학원생 신분을 상실해 백수가 되는 건 두려웠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돼야 할지는 모르겠고.
하릴없이 집에서 빈둥거리기는 싫은데, 달리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이를테면 비를 긋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적 방황의 비가 그칠 때까지 언론대학원에 몸과 마음을 의탁하자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작년 2월에는 방송국 드라마 PD 면접을 봤고, 9월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지원했다.
여전히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곧장 영화감독이 될 수 없다면 드라마 PD 출신 영화감독이라도 되고 싶었다.
드라마 PD는 영화감독과 가장 친연성이 높은 직업으로 보였다.
나는 방송국 1차 면접 전형과 한국영화아카데미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인생의 변곡점은 작년 12월에 찾아왔다.
별 생각 없이 지원했던 지역 일간지 수습기자 공채에 합격했다.
여러 전형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소위 "마와리"도 돌아 보고, 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 보기도 했다.
올해 회사를 나오고 서울로 돌아왔다.
새 직장을 찾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량한 글재주와 말재주, 그리고 실제의 능력보다 "있어 보이는" 능력 덕분이었다.
지난달 1일부터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으니 곧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된다.
취재원들이나 타사 기자들은 나를 "이 기자"라고 부른다.
십여 년 전 어머니께서 부르셨던 것처럼.
어머니께서 그 시절에 나를 "이 기자"라고 부르지 않으셨더라면, 나는 기자가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 까닭은 내가 말의 위력을 누차 절감해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 광화문
새 직장은 광화문에 있다.
내 자리에서 고개를 돌리면 외교부 청사와 인왕산 자락이 보인다.
매일 출근길에 미국대사관을 지나간다.
매일 퇴근길에 광화문광장을 지나간다.
광화문에서 일하는 게 퍽 놀랍고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그게 호들갑 떨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광화문 직장인'이 된 것도 말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다.
한두 해 전부터 나는 어머니나 아버지께 이따금 "광화문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영화감독이 광화문으로 출근할 일도 없고, 광화문 일대에 드라마 PD로서 일할 수 있는 방송국도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말한 심리적 기제를,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되었다.
광화문에서 "이 기자"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말의 가공할 만한 힘을 깊이 신봉하는 사람이 되었다.
# 첫 득점
말의 힘과 관련한 생애 첫 기억.
중학생 시절, 일군의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농구 수업을 받았다.
우리가 모인 농구부는 돈만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비배제적 특성을 지녔던 덕분에 농구를 못했던 나도 부원일 수 있었다.
농구에 큰 관심이 없었고, 더구나 당시의 나는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했다.
그런 내가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 줬을 리 만무하다.
어느 날이었다.
여러 농구부가 모여서 우승자를 가리는 시합을 앞두고 나는 농구부 코치님에게 내가 대회에서 첫 득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그때도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되었다.
첫 득점 상품으로 문화상품권을 받았던 걸 기억한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 말의 힘
앞서 이야기한 생애사적 연유로 나는 말의 위세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그걸 마구 떠들고 다닌다.
그 말들이 축적되면, 모인 말들이 나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여, 내가 말하고 다녔던 그 목적지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이라고 믿는다.
말의 힘.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다짐하게 된다.
타인에게 하는 말들을 조심스럽게 해야지.
그 말들이 축적되어, 모인 말들이 나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여, 듣는 이를 어느 먼 곳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저주의 말은, 하지 말아야지.
응원의 말은, 참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