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시
그녀는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김밥을 판다
라면도 판다 아, 떡볶이도 판다
그녀는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김밥을 만다
라면도 끓이고 떡볶이도 한다
을지로의 상인은 새벽 네 시에 셔터를 올린다
맛술 한 숟갈 진간장 한 숟갈 넣어 어묵을 볶고
달걀말이를 만들고 식용유 두 바퀴 두른 팬에 당근을 볶고
직장인 출근 시간에 맞추려면 네 시에 와도 쉴 틈 없이 빠듯하다
을지로의 상인은 밤 아홉 시에 셔터를 내린다
엉금엉금 늙은 걸음으로 회현동 낡은 빌라에 도착하면
식은 떡볶이처럼 사늘한 반지하 사글셋방에 김밥 속 단무지같은 손녀가 있다
아이는 온종일 햇빛 한 번 못 보는 그녀의 유일한 광휘
을지로의 상인은 밤 열한 시에 손녀를 재운다
을지로의 상인은 밤 열두 시에 한숨을 내쉰다
아이는 어린데 몸은 아프다
몸은 아픈데 아이는 어리다
그녀는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김밥을 판다
일흔 먹은 그녀가 손녀 나이였을 때 그녀는 호텔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녀는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김밥을 만다
일흔 먹은 그녀는 늘근 머리 위 소공동 호텔을 얹고 있다 호텔 투숙객은 아무도 을지로의 상인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