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체 아랫부분에서 내리는 쥐와 씨름하면서 힘겹게 발을 떼어갔다. 장요근, 종아리, 허벅지하단, 발가락에서 다발적으로 쥐가 내리고 있었다. 장요근을 풀면, 발가락의 쥐가 심해져서 더 이상 속도를 올릴 수 없게 되었다.
"난 이제 여기까지 인가?"신체가 몸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나의 나약함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때쯤, 38km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였다. 사실 이 거리까지 왔다는 것은 뛰어온 거리가 아까워서라도 포기보다 완주가 쉬운 시점이다. 가끔 내 이름이 마라톤을 위한 이름이라고 생각해 봤다. "주완"을 거꾸로 하면 "완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난 기록보다는 완주를 위해 태어난 남자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걷지만 말고 완주하자"라며 다시 마음을 정리하였다. 비록 목표인 455 페이스는 못하지만 끝까지 버텨내려고 노력했다.
달리는 도중 주변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러닝 유튜버인 마라닉 TV 꿀물 응원단이 있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며 응원하는 표정과 목소리가 진심이 전달되어 이 사람 진짜 마라톤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그동안 유튜브로 포장된 것이 아닌 찐 러너의 모습이었다. 전달받은 꿀물은 조금 싱겁긴 했지만(?) 자양분이 되어 완주를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꿀물 주세요(좌) 유튜버 마라닉 TV 올레(우)
41km를 지나 잠실경기장에 들어오니 전국각지에서 모인 마라톤클럽, 러닝크루의 응원단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이, 마라톤 완주를 위해 뛰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은 목 놓아 부르짖었다.
"힘내", "이제 다 왔어", "할 수 있어"라며 체력의 한계를 넘어 오직 두 다리와 정신으로 버티며 앞으로 나아가는 러너들에게 힘을 전달해 주었다. 지금까지 마라톤은 나 홀로 긴 거리를 달리는 고독한 스포츠로 여겨지는데 이런 뜨거운 응원단이 있기에 완주할 수 있었다.
저 멀리 결승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저 마지막 코너만 돌면, 그렇게 고대하면 결승선이다.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배번을 보고 내 이름을 불러준다. "서주완 파이팅!" 응원을 들으니 없던 힘이 생겨 두 다리가 더욱 빨라진다. 피니쉬 라인을 넘어서니 끝났다는 안도감과 목표기록을 돌파하지 못한 아쉬움과 책망의 마음이 교차한다. 하지만 첫 번째 마라톤보다 12분 빨라졌음에 만족한다.
마라톤은 뛰는 내내 수많은 경험과 정서적 교감을 하게 된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독, 목표와 인내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만나게 되는 마라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비유하나 보다.
비가 하루종일 내려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오늘의 경기는 끝나지만 내일 또 달릴 것이다. 앞으로도 마라톤과 함께 할 수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