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어둠이 깔린, 깊은 밤 알람을 맞춰두었던 핸드폰이 텅 빈 방안 공간을 가득히 채운다. 짧은 새우잠에도 불구하고, JTBC마라톤에 집중을 했는지, 꿈을 꾸었다. 꿈속 완주 시간은 3시간 32분... 목표인 330보다 2분이나 늦었다. 아이고,, 실력도 없는 애들이 꼭 오두방정 떤다고 꿈까지 꾸는구나, 싶었다.
지난 저녁부터 감기가 걸려서, 각방을 썼던 아들이 상태가 좋지 않아 체온을 재어보니, 39도! 해열제를 먹이고 장모님께 맡기고 버스로 출발하였다. 이번 대회는 아내와 함께 서울까지 가는 대회라서 아들이 아프니, 여간 신경이 많이 쓰였다. 부랴부랴, 나의 애마 슈퍼카에 짐을 싣고 출발한다. 오래된 차라 그런지 엑셀레이터를 밟으니 덜덜 거리던 엔진음이 우렁차고 경쾌하다.
버스 안에 비장한 각오로 앉아 있는 이들을 보니, 덩달아 나도 긴장이 되어 농담을 주고받으며 잠이 든다. 이번 버스는 올 동아마라톤 때 갔던 버스보다 뒤로 눕혀져서, 예전보다 편하게 가게 되었다.
버스의 실내 등이 켜지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니 안성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대회장까지는 한 시간 남짓거리, 준비해 온 찰밥과 된장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본다. 밥을 먹다 보니, 이쪽저쪽에서 러너들이 모여들어 준비해 온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들을 보니, 오늘들이 바로 D-Day가 맞는구나 싶다.
□ 경기장 도착과 준비
화장실이 뭐길래
도착하자마자, 경기장 주변은 도로통제로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되면 폭파되는 시한폭탄처럼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대회에 참여하는 러너도, 준비하는 운영팀도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똑같은 것 같아.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동이 떠오르니 감추어진 웅장한 대회장이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 찼다. 어제 뉴스에서 보니 참가자가 35,000명이라고 했던 것을 본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들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다. 벌써부터 30명은 줄 서 있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소변줄인가요? 대변줄인가요? "물어봤지만 역시나, 대변 줄...."마라톤을 뛰기 전 큰일을 보지 못하면 그 대회는 뭔가 찜찜해"라는 말을 하준이와 대기 타고 있는데 마라닉 TV 모자를 쓴 젊은 친구가 "저쪽에는 아직 자리 많아요"라는 외침에 출발점 총성이 울린 것처럼 우르르 뛰어나간다. 200m 생각지 못한 인터벌을 시행하니 30번째 순번이었는데, 10번째 순번으로 줄어들었다. 참 다행이다. 한 3분 정도 기다리니 또 한 청년이 저기 공원에 화장실 진짜 많아요! 했지만 혹시나 몰라, 우선 자리를 지켰지만 귀가 얇으신 크루 누나는 공원 쪽으로 330 페이스 빠르게 뛰어갔다.
출발선 풍경
동마 때 기록이 3시간 57분으로 이번 대회는 B조로 배정받았다. 18호차에 짐을 맡기고 출발선으로 이동하였다. 이동을 해보니 10k 주자들이 엄청 많았다. 코스모스 밭에 주황색 꽃만 심은 것처럼 물결을 이룬 모습은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처럼 실로 웅장함이 느껴졌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어느 순간 멈췄고 마라톤경기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주로를 뺑글뺑글 돌다 보니, 출발시간이 다가왔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인파들로 둘러 쌓여 더 이상, 몸을 풀지 못했다. 드릴운동으로 골반을 더 풀어줘야 했는데, 아쉬움이 컸다. 내가 1년에 두 번 메이저대회를 나가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서울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것은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운동을 해봤지만 거의 대부분을 상대를 꺾어야만 승리의 기쁨을 쟁취할 수 있는 운동이어서 욕이 난무하고, 불공정한 반칙들이 많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이에게 응원을 받을 수 있는 메이저 대회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곧 목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아나운서의 외침이 시작된다. 5! 4! 3! 2! 1! 출발하늘로 수많은 불꽃이 발사되며 수많은 러너들이 쓰나미가 처럼 쏟아져 나왔다. 좌우를 둘러보며, 표정들을 보니 모두들 너무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