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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Sep 16. 2024

묻는 정.

한국 남자들은 생매장에 환장한다.

'너를 보내고~ 나 또다시 찾은 바닷가~'

"다 왔어. 내리자!"


차에서 내리니 바다 짠내가 코를 간지럽힌다.

해변이 얼마나 예뻤길래 여길 처음 발견한 사람의 안목이 좋다 하여 해변 이름도 안목 해변이다.

동해라곤 믿기 힘든 에메랄드빛 바다가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마지막으로 해수욕장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바닷가에 갈 때마다 난 나를 묻거나, 동생을 묻기 위한 구덩이를 팠다.

혼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을 퍼 올리고 있으면, 언제나 주변에서 도와주는 무리가 나타났다.

신기한 점은 그 무리가 항상 여러 명의 형님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시절에는 없던 단어인 '맑눈광'들이었다.

눈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도와줄까 친구야?"라는 질문을 하고선 친구들끼리 경쟁이라도 하는 듯 엄청난 속도로 흙을 파줬다.

그들은 얼굴만 빼꼼할 수 있을 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나를 묻어줬다.

아이스크림을 사 오던 엄마가 멀리서 봤을 때 축구공이라 착각했을 정도라니까.

형님들은 나를 완전히 묻고, '오늘도 한 건 했다'라는 표정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나서 돌아갔다.


모르는 형님들과의 놀이는 재밌었다. 나를 묻을 때면 "엄마 말 잘 안 들으면 안 꺼내줄 거야. 숙제 밀리지 말고, 편식하지 말고, 양말 거꾸로 벗어놓지 말고.. "등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해줬다.

난 항상 "네... "라고 대답했지만


나를 꺼내주고 가는 형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시간 후에 찾은 바닷가.

성수기가 지난 해수욕장은 아주 한산했다. 이 넓은 바다가 다 나의 수영장이라 생각하니, 마치 송강 정철이 된 것 같았다.  


같이 간 동생과 옛 기억을 되살릴 겸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꼬마 형제가 흙 놀이를 하고 있었다.

성벽 쌓기 놀이를 하는 형과 동생. 옛날 시절을 떠올리며 친구에게 "우리 쟤네 묻어줄까?"라고 말했다.


같이 놀 던 동생이 "요즘엔 MZ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라고 말했다.

'요즘엔 이러면 좀.... 그렇지? 맞아... 안 좋아할 수도 있어...'라며 그냥 지나쳤다.

아쉽지만, 사회가 사회인만큼 괜한 오해를 사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다로 '풍덩' 빠졌다.


해수욕을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흙 놀이를 하는 형제들.

이제는 형이 자기 몸에 흙을 얹고 있다.

'아무리 MZ 꼬마 친구들이더라도, 흙 놀이를 어떻게 참아? 이건 한국인의 정이야 정.'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안녕, 형이 도와줄까?"

"형이 진짜 목 끝까지 묻어줄게"

라고 말하며 아이들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머님이 '저 대신 해주세요... '라는 눈빛을 보내셨다.


그 순간 내 눈빛을 나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 눈빛도 그때 나를 묻어주려던 형님들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도파민이 팍 터졌다.


세월이 흐르며 생긴 근육과 흙 파기 기술. 굴착기가 된 것처럼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금세 어린아이 한 명을 묻을 수 있는 구멍을 만들었다.

"누가 들어갈래.?"

꼬마 형이 멋지게 나섰다.

형을 묻기 시작했다.

생면부지의 꼬마와 엄청나게 가까이 붙어 있으니 어색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순간 입이 뇌보다 먼저 일을 시작했다.


"너 어머니 말 잘 듣는다고 안 하면 안 꺼내 줄거야~. 항상 숙제 밀리지 말고, 양말 거꾸로 벗지 말고!"

등등 그 시절 나에게 형들이 했던 잔소리를 그대로 해줬다.


아. 그 형들도 어색했구나.


꼬마 친구를 묻다가 한 번씩 어머님의 눈치를 봤다. 혹시 싫어하시면 바로 그만두어야 하니까... 하지만 어머님은 좋아하시며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녹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묻힐때 우리 엄마는 디카를 들고 있었는데, 세월이 체감 되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어머님의 손에 주름이 보였다. 엄마 생각이 났다.



그리고 묻힌 꼬마 친구. 목만 나와 있는 모습에서

"감쟈합니다~"발음이 새는 감사 인사를 받았다.

발음은 샜지만 감사함은 새지 않고 내 마음에 들어왔다.

동생에게 재밌는 추억을 선물해 줬다는 뿌듯함이 들면서 옛날에 나를 묻어줬던 형들의 표정이 생각났다.

나도 그 형들처럼 웃고 있었다.


바라는 건 없었다. 훗날 오늘을 회상했을 때 재밌는 추억이 되었으면.

그리고 다음에 다른 꼬마 친구들이 해변에서 땅을 파고 있다면 그 친구들을 묻어주면 좋겠다.

나를 묻어줬던 그 형님들도 어렸을 땐 또 다른 형님들에게 묻힘을 당했을 것이다.


이런 생매장의 계승이야 말로 한국 남자들의 정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아참, 꼬마 친구 안 꺼내주고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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