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신은 정말 안녕할까
과거와 비교하여,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은 좋아졌다. 수십년 전의 과거와 비교하여 그러할 뿐 아니라, 2000년대, 2010년대와 비교하여서도 그러하다. 누구나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정신 질환 또한 신체의 문제로 이해된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 질환, 환자들, 그리고 치료에 대한 오해가 많다. 오늘은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오해와 잘못된 생각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정신과 약물은 중독된다 - X / △
정신과 약물은 실제로 중독성이 클까? 사람들은 정신과 약물에 대한 환상과 오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약을 먹으면 황홀하게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약은 먹자마자 사람이 중독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신과 약물은, 중독성이 없는 약물, 중독성이 거의 없는 약물, 중독성이 있는 약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정신과 약물은 중독성이 없는 약물이다. 정신과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항우울제, 항정신병제 등의 약물은 중독성이 없다. 환자들이 중독성으로 오해하는 부분은, 해당 약물들은 장기적인 사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사용에 대한 효과를 느끼고, 약물 중단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중독성이 거의 없는 약물들도 존재한다. '거의' 없는 이라는 단어가 불편할 수 있다. 중독성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인데, 거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중독성이 거의 없다는 의미는, 약물을 오남용 시 중독성이 있을 수 있지만, 적정 용량을 기간에 맞추어 사용하면 중독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적절한 처방 하 복용 시 중독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벤조다이아제핀계 안정제 등 일부 약물들이 이에 속한다.
중독성이 있는 약물도 있다. 메틸페니데이트나 암페타민계 약물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현재 ADHD 치료에 많이 사용되는 약물이며, 암페타민계 약물보다 메틸페니데이트 관련 약물들을 일차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암페타민은 실제로 마약류에 해당하는 각성제이며, 아주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의학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외 큰 중독성을 보이는 약물들은 대부분 안정제나 마취제인데, 정신과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암 환자나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안정, 진통 상태에 대해서 사용된다. 중독성이 있는 약물들은 대부분 일차 치료제에 해당되지 않으며, 제한적인 용량과 방식으로만 사용된다. 이 또한 적절한 처방 하에서는, 문제가 될 정도의 신체적 중독성을 보이지는 않는다.
현대 의학은, 중독성 있는 약물의 사용에 회의적이며, 약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처방 시에 위험성과 중독성에 대해 환자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약물의 부작용과 위험을 모른채로 복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에,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더라도, 중독성이 있는 약물을 복용할 가능성은 매우 적으며, 그러한 약물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서, 결정할 수 있다.
2. 정신과 환자들은 위험하다 - X / △
조현병 환자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뉴스에 나온 것을 봤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위험하고,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기피한다. 정신과 환자들은 정말 위험한가?
조현병을 제외한 정신과 환자들은, 타인에게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일반 사람들과 비교하여 높지 않다. 하지만, 자살을 하거나, 자해를 하는 등 스스로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은 일반 사람들과 비교하여 높다. 결국 타해의 위험성은 대부분 높지 않지만, 자해와 자살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환자들을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현병과 정신병적 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경우, 일반 인구 대비 타인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고, 증상이 조절되지 않고 경과가 좋지 않은 경우 그러한 위험이 더욱 높다.
많은 외래 환자(질환에 관계 없이)들의 경우, 일반 인구와 비교하여 자살, 자해, 타해의 위험성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일상 생활에서 마주하는, 증상이 조절되는 정신과 환자들의 경우, 전혀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증상이 심한,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 있어서, 자살 자해 위험은 크게 높아진다. 일부 조현병과 정신병적 장애 환자들의 경우, 통계학적으로 일반 인구 대비 높은 범죄율을 보인다.
3. 정신과 진료는 불이익이 있다 - X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를 걱정하고 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디서 들었는데,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구직에 문제가 된다던데?"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보험에 큰 문제가 될텐데"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공무원같은건 못하잖아"
등의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신과 진료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활에, 전혀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의료법 21조에 따르면, 본인의 동의 없이 의료 정보의 열람은 대부분의 경우 불가하다. 특히 정신과 진료 기록은 병원 내에서도,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열람할 수 없다. 따라서 취업 등의 상황에서, 회사나 기관이 환자의 동의 없이 정신과 진료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회사는 취업 상황에서 의료 정보나 보험 내역을 요구하지 않으며, 정보를 일방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건강 상태로 인한 취업의 불이익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아주 일부의 회사나 기관에서, 최근 3-5년간의 의료 기록을, 개인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모든 건강 보험 내역을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회사와 관련된 의료 기록만을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더라도, 개인이 해당 내역을 회사에 제출하지 않는 이상, 회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진료를 받은 것을 사람들이 알더라도, 전문의 소견서를 제출한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실을, 본인 동의 없이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으며, 의무 기록이 필요하더라도, 해당 시점의 소견서로 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문제가 되는 상황은, 항정신 의약품을 복용하거나 이에 중독된 상태, 직업 활동에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황에서 정신과 진료가 주는 불이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실질적으로, 정신과 진료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보험 신규 가입이다. 보험 가입 중 고지 의무로 인해, 최근 5년 정도의 진료 기록을 알려야 하는데, 정신과 진료는 대부분의 실손 보험에서 거절하는 고지 항목이다. 고지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정신과적 문제로 보험의 혜택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보험의 혜택이 정신과적 문제와 관련이 없다면, 보험의 혜택을 볼 수 있긴 하다. (보험 가입 시, 정신과적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를 쭉 들키지 않는다면, 정신과적 문제와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혜택을 받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법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할 수 없다. 기존의 보험을 잘 유지해나가자.
4. 정신과 약물은 크게 효용이 없다 - X
가장 문제가 되는 오해라고 생각한다. 정신과 약물이 효과가 있어서 처방을 하는지,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처방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환자들도 만났다.
현재 사용되는 정신과 약물은 좋은 효과를 보이는 약물들만을 취사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오해가 생긴 까닭은 정신과 약물의 특성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하게 먹는 약물은 급성기 질환에 대한 효과를 보인다. 감기약을 내과에 가서 처방받아도, 짧으면 사흘, 길면 일주일이면 효과를 보이고, 병이 낫는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타이레놀의 경우에도, 30분에서 1시간이면 진통 효과를 보인다. 위장약도 하루 이틀이면 말을 듣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급성기 약물을 가장 많이 접하고, 이들이 익숙하다.
하지만 정신과 약물은 만성기 질환에 대한 약물이며, 짧게는 2-3달, 길게는 몇 년을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의 경우 수 주에서 몇 달 간 복용해야 효과를 보기 시작하고, 항정신병 약물의 경우 몇 달에서 몇 년을 복용하며, 복용 기간 중 지속적으로 효과를 본다. 이런 약물은 초기 몇 주, 몇 달 동안 환자가 느끼는 효과가 거의 없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환자들은 정신과 약물의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약효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치료의 순응도는 더욱 떨어진다. 효과가 좋은 약도 매일 처방에 맞게 챙겨먹는 것은 힘들다.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약을 챙겨먹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처방과 다르게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약을 빼먹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약의 효과는 더욱 약해지거나, 아예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오해가 깊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신과 약물은 처방 기간과 용량을 지켜 복용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답답하고, 느리더라도, 온전한 치료와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신과에 대한 벽은 아직도 두텁다. 이를 가벼이 여기는 풍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진료를 받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생기는 것은 정말 지양해야 한다. 또한 환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만연한 사회는, 그들의 치료를 방해하고, 삶에 악영향을 준다.
조금씩 알아가며, 이해해보자. 나도, 나의 친구도, 나의 애인도, 부모님도, 언제나 환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