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은행원 첫 출근, 떡국을 끓였다.

떡국? 떡국 좋지~

 빙판길에서 멋지게 다이빙하신 아버지, 척추에 금이 가 새해부터 병원신세를 지게 되셨다. 필기시험과 면접 준비를 뒤로 할 수 없어 S은행 최종면접이 끝나서야 아버지를 뵈러 고향으로 내려왔다. 당신 몸보다 아들 걱정에 면접은 어땠는지부터 여쭤보는 아버지를 보니 망쳐버린 면접이 떠올라 미안하면서도 부끄러움에 웃음이 났다. 전 직장 퇴직금으로 상반기 채용시즌은 어떻게든 버텨볼 각오였기에 다시 집으로 올라가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같이 이직 준비를 하던 대학 동창 놈의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전화로 다짜고짜 '합격!' 이 한마디만 던지고 끊어버렸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축하하는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동시에 났다. 앉을 수조차 없는 아버지를 위해 밥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올려 입에 넣어드리고 있었다. 부자지간의 정이 오가던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은행씨 이번 상반기 채용에 합격되셔서 미리 연락드렸어요. 1월 2일부터 출근하시면 되고 서류들 준비하고 도장 하나 만들어서 오세요.' 그토록 바라던 금융권에 합격한 순간이었다. '아 그리고 시무식이 있으니까 7시 40분까지 출근해 주세요!' 2022년 12월 26일, 나는 그렇게 은행원이 되었다.


  40분까지 오라고 했지만 신입사원의 패기로 30분 일찍 도착했다. 도착하니 1층에는 아무도 없고 2층에서 북적북적한 소리가 났다. 가방을 놔두고 올라가 보니 2층 회의실 뒤편에 있는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와 함께 사람들이 보였다. 면접관으로 앉아계셨던 분들과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직원분들이 삼삼오오 모여계셨다. 무얼 하는고 보았더니 냄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버너에 떡국을 끓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기가 민망해 냉큼 국자를 뺐었다. 갓 입대한 이등병처럼 호기롭게 국자를 뺐었지만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 채용사이트에 나와있던 금융권 회사의 리뷰들이 생각났다. '금융권은 아직 꼰대 문화가 남아있더라', '회사에서 이런 일까지 시키더라. 너무 힘들다', '탈출은 지능순이다!' 등등... 국자로 떡국을 휘휘 젓고 있었는데, 뒤에서 주임님이 내 생각이라도 읽은 듯 "은행씨 우리 원래 이런 곳 아니야"라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얼마 뒤 함께 합격한 동기들이 왔다. 국자를 젓고 있는 내 모습이 자연스러웠는지,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더라. 나도 똑같이 90도 인사를 해주었다. 어쨌든, 다 된 떡국에 김가루와 참기름까지 솔솔 뿌리고 회의실 자리마다 떡국과 김치를 올려두었다. 내 당황함도 떡국에 넣었다는 걸 사람들을 알까. 샴페인까지 올려두더니 시무식 준비가 끝난 듯했다. 새 가족들이 생겼으니 신입직원들 한 명씩 한마디 하라고 한다. 당황의 연속이었다. 떡국을 먹고 1층으로 내려와 직원 한 분 한 분에게 자기소개와 함께 90도 인사를 했다.


 이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잘못 들어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