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에게 건네는 선물

우연

by 별들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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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 이끌려 인형뽑기방에 들어갔다. 인형 뽑기는 생전 처음이다. 아래쪽은 500원짜리 동전 전용에 인형도 작았고 쪼그려 앉아야 한다. 서서 이용하는 위쪽은 1000원부터 시작하고 아예 카드까지 꽂게 했고 인형도 큼지막하다. 친구가 500원짜리를 한 움큼 바꿔와서는 나에게 딸랑 4개만 건넨다. 난 호기롭게 동전을 집어넣고 손잡이를 틱틱 튕기며 널브러져 있는 인형들 위를 날았다.


친구는 버튼을 꾹 눌러야 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냥 한방에 쾅 눌렀다. 세상에 이렇게나 힘이 없을까? 집게가 인형 겨드랑이 사이로 쏙 들어가서 인형을 들고 나르나 싶었는데 얼마 못 가 놓치고 만다. 집게가 덜렁덜렁 춤춘다. 옆에서 지켜보던 꼬마가 ‘어~ 저 집게 벌어졌네’라고 훈수 둔다. 고 녀석 하며 아이를 한번 쓱 쳐다보고, 자세히 보니 집게 하나가 틀어져 있었다.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친구는 대번에 알아보고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직접 돈을 넣고 손잡이를 움직이더니 꾹 눌러 인형을 들었다. 오호~ 근데 이게 웬일인가. 옆에 있던 인형까지 출구 쪽으로 끌려오는 거였다. 때를 놓칠세라 친구가 발로 쾅쾅 출구 쪽을 두들기니 그 녀석 몸이 쓰러지며 출구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야~ 국대가 월드컵서 꼴 하나 집어넣은 것 마냥 순간 목청을 터뜨렸다. 오~오~ 꼴인! 한 번에 인형이 두 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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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도 인형 뽑기 같을 때가 있다. 유리상자 너머 인형들처럼, 우리는 인생이라는 커다란 통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고 팔을 뻗는다. 사랑, 일자리, 행복, 명예, 돈 혹은 선물 같은 어떤 우연 하나. 선택은 조심스럽고, 때로는 충동적이다. 확 움켜잡으면 될 줄 알았는데 정작 집게발은 의도한 만큼 정밀하지도, 열심이지도 않다. 가장 원했던 인형은 눈앞에서 툭 떨어지고 잡은 줄 알았던 가능성은 미끄러져 나뒹군다. 삶은 얻어걸리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뜻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열심과 결과는 쉽게 비례하지 않는다.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누군가는 기술이라고 답한다. 불의 발견,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 등 기술은 세상의 구조를 바꾸고 인간의 사고마저 바꾸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경제적 욕망이라 말한다. 풍요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이 세상을 밀고 간다. 또는 신념과 가치, 종교, 이데올로기, 인권, 민주주의 같은 정신적 자산이 세상을 이끈다는 주장도 있다. 지도자, 언론, 검찰 같은 권력의 장치를 지목하는 이도 있다.


독일의 생물 물리학자 슈테판 클라인(Stefan Klein)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우연.” 그의 책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사실상 ‘우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한다.


우연의 법칙이라니, 모순처럼 들린다. 예측할 수 없고 설명되지 않는 일이 ‘우연’인데, 어떻게 그것에 ‘법칙’이 붙을 수 있는가? 클라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동전을 한두 번 던질 때는 앞면인지 뒷면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하면, 그 결과는 점차 50:50에 수렴한다. 즉 개별 사건은 인과를 벗어나 있지만, 다수의 우연이 모이면 ‘경향성’이 드러난다. 이것이 통계학, 경제학, 진화이론, 기상학, 심리학 등이 ‘우연 속의 규칙성’을 찾는 이유이다. 클라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우연의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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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예측 불가능한 세계, 우연의 세계에서 패턴과 법칙을 알기 위해 ‘동전’을 얼마나 넣어야(혹은 던져야) 하는가이다. 수천 번? 수만 번?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엔 뽑을 수 있을 거야!”라고 한다면, 이것은 분별없는 고집일까 포기하지 않는 도전일까? 동전 10개 가운데 이미 5개를 썼는데 계속 더 집어넣어야 할까.


여기서 드러나는 건 인간적 한계이다. 우리는 “무한 반복”을 통해 법칙을 확인할 수 없다. 가진 자원(동전, 시간, 에너지)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언제나 중도에서 멈춘 불완전한 실험으로 끝나기 일쑤다. 그런데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우연의 선물”이 들어 있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6번째 동전에서 실패할 수도, 예상치 못한 행운이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 자체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니 이런 질문이 남는다.


“나는 몇 번까지 시도할 수 있는가?”

“내게 남은 동전은 몇 개인가?”

“나는 그 동전을 고집으로 쓰고 있는가, 도전으로 쓰고 있는가?”


결국, ‘인형 뽑기’라는 작은 실험은 우연의 세계 전체와 맞닿아 있다. 그 체험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우연의 법칙은 수천, 수만 번의 시행 속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 삶은 언제나 몇 번 안 되는 동전으로 치러진다. 그래서 가능한 건 단 하나. 남은 동전을 넣어보는 용기뿐. 다만, 얼마나 시도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우리는 남은 동전을 쥔 채, 그것을 고집으로 쓸지 도전으로 쓸지 매번 선택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현명함도 필요하다. 동전을 쥐고 있다고 해서 내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클라인의 말처럼, 계획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사랑스러운 착각”일뿐이다. 아울러, 인형 뽑기에서 집게발을 다루는 요령이 필요하듯, 인생에도 방향을 잡는 자기만의 ‘감각’이 필요하다. 몇 번의 시도로 손맛을 익히듯, 삶에도 실패와 시도 속에서 길을 감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형 뽑기에서는 몇 번의 시도만으로도 조종의 감을 잡을 수 있지만, 인생 뽑기에는 좀 더 수고스러운 투자와 수련이 필요하다. 여러분에게는 자기만의 기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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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직 몇 개의 동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이라는 하루에 동전을 한 번 더 집어넣을 생각이다. 그건 단순한 시도가 아니다. 우연이라는 법칙에 내 삶을 열어두는 행위, 나에게 아직 가능성을 허락하는 연습이다. 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고, 바라는 인형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뜻밖의 인형이 덤으로 딸려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우연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도약의 순간이 되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기도 한다.


삶의 전환점이 예기치 못한 만남이나 실패에서 비롯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우연은 단순한 ‘운빨’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시작하게 하는 씨앗이다. 예술가의 발견, 과학자의 발명, 혁신가의 발상도 많은 경우 우연한 탈선에서 탄생했다.


“우연에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하라.

그 속에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삶의 선물이 숨어 있다.”

-슈테판 클라인


맞다, 우연에는 선물이 숨어 있다. 우연히 찾은 인형뽑기방이 그랬고, 모든 가능성으로 다가온 인형들이 그랬고, 통 앞에 함께 서 있던 친구와 내가 그랬고, 갑자기 굴러 들어온 인형이 그랬다.


그날, 돈을 쥐여주고 어깨를 토닥이는 손끝. 친구와 함께 터뜨린 환호와 웃음. 그 순간은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반짝인다. 삶은 그렇게, 우연을 가장한 선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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