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른 오늘이 말을 걸 때

신호

by 별들의강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진정한 당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다.”

(카를 융)


한 책의 띠지에 적힌 이 문장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흔의 지진이라는 표현이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마흔이 훨씬 지난 뒤였지만, 그때의 나 역시 ‘진정한 나’라는 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진짜 나라는 게 정말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내 안 어딘가에서 오래 묵은 무언가가 정체를 드러내겠다는 듯 꿈틀거렸다. 그것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 타인의 기대와 기준으로 살아온 세월이 한순간 흔들리며, 마치 새로운 지층이 솟아오르듯 ‘나’라는 중심이 제 목소리를 내려고 달려드는 모습.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라며 이성은 나를 재촉했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살아보라며 무의식은 은밀히 유혹했다. 마음이 그렇게 요동치던 시절이었다.


첫 신호는 우연히 잡혔다. 마흔의 9월, 주말 아침. 한가롭게 신문을 넘기던 손끝이 어느 순간 멈췄다. 「나는 걷는다」. 묘하게 단단한 제목이었다. 그 한 줄이 나를 붙잡았다.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 한강 둔치 길을 따라 출근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 한편이 울렸다.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 속에서 몸을 구겨 넣고 출근하던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는 세상의 리듬에 맞추어 살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만의 리듬으로 걷고 있었다.


글쓴이가 한 사람을 소개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30년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프랑스 사람. 탈것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무려 1만 2천 킬로미터를 홀로 걸은 사람.


그쯤 되니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 그는 60의 나이에, 세상의 중심이 아닌 길 위를 택했을까. 무엇이 그를 그 먼 길로 내몰았을까. 그리고, 그는 걸으며 어떤 자신을 마주했을까. 그래서 그의 책 『나는 걷는다』를 읽었고, 나의 인생 책이 되었다.


“내게 여행은 책이나 여행 가이드에 없는 걸 발견하는 것이다.”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타인의 경험으로 구성된 세계를 떠나, 가이드에 없는 걸 발견하라고, 그런 당신만의 여행이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신호는 설명할 수 없는 울림, 내 안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다른 나’를 깨우는 떨림이었다. 글은 계속 이어지며 나를 흔들었다.


“대체 뭘 발견하려는 거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나도 모른다. 내게 여행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믿기 힘든 존재를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시골 구석의 소박한 조화로움에 충격을 받거나, 그때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못했거나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을, 나 자신이 하거나 생각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여행은 사람을 형성시킨다. 그런데 자신을 형성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변형시킨다면?”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2)


바로 그런 여행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의 말이 가슴 깊이 박혔다. 무엇보다 ‘책이나 여행 가이드에 없는 걸 발견’하겠다는 그의 느림과 여유, 낯섦과 우연, 놀람과 설렘의 일상이 부러웠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 위로 담담하게 들어서는 용기, 인생 막바지에도 자신의 변화를 거침없이 실행하는 도전이 인상적이었다. 생은 끝나지 않았고 삶은 새로움으로 가득하니, 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그의 고집스러움이 멋있었다.


그는 새벽의 빛 속을 걸었고, 나는 형광등 아래를 걸었다. 그의 발 밑엔 모래와 바람이 있었고, 내 발 밑엔 인도블록과 시간표가 있었다. 정해진 길을 반복하는 나의 하루와는 분명 달랐다. 그는 컴컴한 터널을 벗어나 빛나는 태양 아래를 걸어보라고 유혹했다. 안개 낀 평원의 풀밭에 앉아 바람을 코로 마시며 빵과 치즈 한 조각으로 식사하는 한가로움을 느껴보라 속삭였다.


그렇게 바람 같은 자유를 맘껏 누리는 한 사람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책을 읽는 순간 모든 일상이 멈추며 오로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길 위로 빨려 들었다. 그 신호는 책에서 왔지만, 사실은 내 안에서 오래전부터 울리고 있던 소리였다. 『나는 걷는다』는 삶이 내게 보낸 신호였다. 내 존재가 새로 쓰일 여백을 향해 나아가라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부름이었다.


삶의 신호는 언제나 일정하고 평평하게 퍼져 있어, 전혀 긴장되지 않는 시간들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장벽 앞에서 막연히 무언가를 기다리다 체념하며 돌아서는 우리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다. 그것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에 물음을 던지는 단절, 따분하고 답답한 일상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는 균열이자 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제때 제대로 감지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이게 신호구나’라고 단박에 알아채지 못한다. 그저 시간이 지난 다음 돌이켜 보니 그게 색다른 신호였음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당시에는 마음이 약간 흔들리는 정도, 귓가에서 무언가를 소곤거리다 사그라지는 정도로 그친다. 그러니 마음이 흔들리고 뭔가의 울림이 감지된다면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한다. 잠시 혼자가 되어 차분하게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 떨림을 지그시 응시해야 한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구르는 상자” 속에서 캄캄한 하루를 왕복하는 나에게 ‘이제 여기를 떠나는 것은 어때?’라며 어깨를 툭툭치고 있었다. 스스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그대의 여행을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라고 덧붙였다. 결과가 아닌 과정,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길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들려주었다. 아늑한 안정보다 비바람 속의 자유를 택하라고, 동시에 견디고 이겨낼 마음가짐이 되어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러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은퇴라는 인생의 한 매듭을 지은 다음 모험을 시작했고, 나와 대부분의 사람은 아직 매듭을 짓지 않은 처지이므로 복잡한 마음속을 서성이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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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단한 실험 하나를 했다. 금요일은 걸어서 퇴근하기. 도보 여행이 새로운 것의 발견이라는 그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회사에서 집에 이르는 15km 정도를 걸었다. 서소문에서 시작해 만리재길, 마포대교, 선유공원, 오목교를 거쳐 집에 도착하는 네다섯 시간의 야행(夜行).


분주한 퇴근길의 자동차 행렬과 횡단보도 앞에서 숨 고르기,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 접근금지를 알리는 공사장 표지판, 227명이 선유공원에 머물고 있다는 안내등, 줄지어 펼쳐진 노란색 은행잎 길, 녹색 트리와 빤짝이 방울로 한층 더 고요해지는 12월의 밤, 언제든 선택할 수 있고 들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갈림길이 그곳에 있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말이 맞았다. 짧은 시간이어도 도보 여행은 책에 없는 세상을 보여주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예상치 못한 만남을 선물했다. 보지 못했던 낯선 세상, 잊고 있던 내 마음과의 조우였다.


하나의 신호를 수신하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책 때문에 시도한 작은 실험이 나를 새롭게 형성한다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다. 책이 나를 불러냈고, 걷게 했고,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만날 책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책은 나를 세우고, 전진하게 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꾸준히 물을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것이고, 삶을 변형시킬 것이다.


또한, 나는 결심했다. 회사 밖으로 나가보자. 길 위에 서 보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자신이 걷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다음을 찾기 위해서.” 나 역시 그러고 싶었다. 여행 가이드에 없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나만의 여행을 시작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끊임없이 전진해서 그다음을 찾아보자. 그 다짐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피어올랐다.


어쩌면 ‘그다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발을 내딛는 바로 이 방향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여행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느꼈다.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너희의 명예로 삼도록 하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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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멈춤: 붉은 여왕의 울타리를 넘는 법” 다음으로 이어지는 글입니다.


* 주의 사항: 회사 밖에 늘 그리는 자유와 행복과 설렘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글 부터 읽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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