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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Mar 28. 2024

우울의 단면(10)

사는 게 숙제인 여자

 안부를 먼저 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는데 연희의 목소리는 힘찼다. 일을 다시 시작했고, 바쁘게 지내다 언니의 부재가 느껴질 때면 통곡하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털어버린다는 말을 참 활기차게도 했다. 연희는 시시껄렁한 말을 한참 동안 늘어놓다가 말끝에 한마디 살을 덧붙였다.

 “영진아, 나 여기 있어! 내가 언니한테 이 말을 못 해줘서 미안했었거든. 너 혼자 아니야. 언제든지 연락해. 자주 보자.”

 전화를 끊고 나는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꺽꺽 소리를 내지르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었다. 고물상에 얼기설기 쌓아놓은 잡동사니들 마냥, 어지러운 머릿속을 붙들고 무엇 때문에 우는지도 모른 채로 악을 썼다.


 화분의 마른 겉흙이 물을 머금고 있다가 쑥 삼켜 내리는 모습을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보았다. 뿌리까지 스며들면 식물의 줄기로, 가지로 다시 밀어 올리겠지. 시든 잎을 세우고 햇빛을 받아 싱그럽게 빛나겠지. 생각이 꼬리를 물다 더 나아갈 길이 없음을 자각한 채로, 중얼거렸다.

 “살고 싶으면 힘을 내서 살아. 난 괜찮아. 괜찮아.”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옷을 갈아입고 목이 긴 양말을 신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맸다. 단숨에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숨을 크게 들이셨다 내쉬곤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에 차 쓰러질 듯이 뛰었다. 심장이 가쁜 숨을 목구멍으로 밀어 올리며 살아있음을 내비쳤다. 사람의 대뇌는 두개골에 갇혀 감각 정보만 받아들이는데 얼굴의 근육을 움직이면 뇌의 근육도 움직인다고 한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경련이 일 듯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억지로라도 끌어올린 입꼬리가 뇌의 착각을 일으켜 축축하고 꿉꿉한 내면의 환기구가 되길 바라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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