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회에 이어 '침묵'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 사실 이 에세이를 쓰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침묵' 때문이다. 대물림되는 시아버지와 그 아들의 침묵... 만일 그가 가족 모두를 길거리로 내몰 만큼의 일생일대의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침묵으로 답하지 않았더라면 내 반응도 달랐을 것이다. 내 사적인 이야기를 공론화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끈이 이리도 복잡해야만 하는가. 가장의 자존심이 공동체의 안위보다 앞서야 하는가. 결혼제도, 그리고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정치적인 무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란 인간은 결혼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 헤게모니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런데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가 자신의 신념이 완전하게 흔들렸기 때문에 자살을 택한 것처럼, 나 역시 죽음을 소망할 정도로 흔들거렸다.
언젠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남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일 년 동안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끝까지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난 그렇게는 못 사니, 왜 그런 표정인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말하라고 다그쳤지만 소용없었다. 돌이켜 보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자랑이라고 떠들어 대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신랑은 주식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 그런데 그것을 십 년이 넘도록 나에게 감추었다. 감추기 위해서 얼마나 이상한 행동들을 많이 했겠는가. 물론 수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물으면 자신을 그렇게 못 믿냐며 되려 더 크게 소리치고 짜증을 냈다. 알고 보니 나중엔 별별의 돈들을 다 끌어다 썼다. 문제는 그 후다. 이런 일이 발생한 지 3년째가 된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런 일이 폭로된 후 더 악해지고 더 자신의 자존심만 운운하며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은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포인트를 빗나간다.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포인트인데, 핵심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리하고 코너에 몰리면 항상 본질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같이 살아야 할 이유들이 점점 소멸된다. 이것이 문제다. 이유를 알 수 없다. 가족을 이렇게 까지 코너에 몰아 놓고서 당당한 이유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망상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홀로 앉아 있는데 항상 보이지 않는 두터운 벽이 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45도 각도로 숙이고 밥을 먹는다. 내가 차리는 밥을 먹는 것이 이상하다.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침묵을 하면 마음이 편할까. 과연 패자는 누구인가. 돈을 말없이 탕진하고 다 날린 남편일까. 아니면 그
여기서 말한 "산산조각 난 땅,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산산조각 난 제국, 그리고 무참히 박살난 꿈".. 나와 꼭 같았다.
행위에 바보스럽게 넘어간 나일까.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인들의 반응과 대처를 다룬 <패배를 껴안고>에서 패자의 시선을 이렇게 말한다. "패자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면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비참함과 방향 상실, 냉소, 분노 같은 감정뿐만이 아니라 희망과 저항과 비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꿈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18) 그래서 내가 패자다. 비록 지금 내 시선은 비참함과 방향 상실, 냉소,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앞으로 계속될 내 이야기는 삶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