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해부> 영화 이야기와 나, 그리고 어느 학생의 이야기
침묵에 관한 이야기.. 이것에 관해서 라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몇 달 전 후배의 추천으로 <추락의 해부>라는 영화를 보았다. 밤늦게 보았기 때문에 큰 상영관의 관람자가 총 7명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했다. 주인공 여자가 작가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다락방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남편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로 의심되면서 아내가 범인으로 몰리는 과정을 그려낸다. 아들은 어렸을 때 자동차 사고로 눈이 멀었고 그 사고는 아버지의 실수다. 아들의 나이는 열한 살이다. 그 영화 줄거리 상 아내가 정확히 남편을 죽일만한 사유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감독의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그리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관람자는 대단히 혼란스럽다. 영화에서 주인공 여배우의 연기가 매우 뛰어난 것은 관람자인 내가 어떤 사실도 추측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 속 아내는 그렇게 많은 논리와 반박과 객관성을 지닌 것 같지만, 실상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의 폭력에 관하여 말이다.
영화 속 남편은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우월한 아내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인물이다. 자신도 아내처럼 인기 있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밥벌이로 강의를 하느라 글 쓸 시간이 없다며 불평한다. 그런 남편을 아내는 달랜다. 꼬이고 뒤틀린 남편의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달래줘야 하는 건 아내의 몫이다. "이렇게 떠들다가(불평하다가) 시간만 가잖아. 이럴 시간에 차분하게 앉아서 뭔진 모르지만 하고 싶은 거 해."(아내 왈) "나도 글 쓰고 싶어, 당신처럼."(남편 왈) "그럼 써, 집안일 때문에 글 못 쓴다는 작가 없어. 당신이 뭘 하든 못하든 그 책임을 나한테 돌리면서 징징대지 말고."(아내 왈)... 끊임없이 불평하는 남편을 받아줘야 하는 아내였다.
폭력은 육체적인 종류의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의 관계에 있어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 관계인데, 만일 침묵을 행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폭력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매우 유용한 언어적 도구들을 사용한다. 어떤 사람은 반복적인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어필한다. 아버님이 그랬다. 내가 물어보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헛기침을 반복적으로 한다든가, 일부러 이빨에 무엇인가 끼었을 때 내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낸다든가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었다. 얼마 전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데 한 중년 아저씨가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5시간에 걸쳐 계속 내고 있었다. 눈짓을 주었지만 당연히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이혼해야 하는 사유 중 하나는 신랑 역시 밥 먹을 때 쩝쩝거리며 먹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느 날 밥을 먹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딸아이가 "아빠 소리를 안 내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커?" 그렇게 말하고 딸아이의 부탁은 어느새 사라져 지금도 소리를 낸다. 그 소리만 들릴 뿐 밥을 먹는데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딸아이의 말을 무시한다. 영화 속 남편이 아내의 말을 끊임없이 무시하며 자신의 불평과 뒤틀린 열등의식만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한 학생이 에세이를 써냈다. 이혼한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다. "단순히 강하게 밀치는 것에서 시작했던 손찌검은 점차 폭력의 형태로 변모되고, 분노의 끝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폭력은 점차 짜증의 시작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났다. 이빨이 부러지고 흉터가 남을 정도로 무자비했던 폭력은 비단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밀폐된 둘만의 공간이면 어디서든 이루어졌다"라고 말이다. 그 학생이 세 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는데, 그런 아버지가 최근에 다시 만나줄 것을 딸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아내의 침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내용의 것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다. 나에게 또는 내 딸에게 했던 그 많은 행위와 폭언들을 생각하면 도대체 가정을 지키겠다는 아내의 침묵은 미련한 것이 아닌가. 영화 속에서도 아들을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침묵이 가슴 아프다. 아프다는 말로 하기엔 부족하다. 해결책이란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객관적일 필요가 없다. 누가 먼저 힘을 행세했던가. 누구 때문에 침묵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는가. 이 세상에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선이라는 것이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