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서사를 통해 나를 말한다 --- <여성의 종속>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가상의 스토리가 아니다.
작금의 현실 속에서 진짜 일어나고 있는 내 감정의 여정이다. 난 대학에서 인문학을 비롯해
페미니즘을 강의하는 강사다. 누군가에게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은 없다.
다만 20세기 영국여성작가를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을 가르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내 삶은 페미니스트적인 면모가 전혀 없다. 온통 아이러니투성이다. 20년 가까이
홀로 된 시아버님을 모셨고 현모양처인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착한 여자”라는 유전병 때문에,
신랑과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다. 박사논문을 쓸 때조차 매 끼니 집밥을 대령했고 제사를 지냈다.
게다가 명절이면 친척들은 우리 집에서 3박 4일을 먹고 잠을 잤다. 어디 그것뿐이었겠는가. 아이들을 20년 가까이 키우며 밤마실을 한 번도 다녀온 적도 없고, 다양한 냄새를 풍기시는 시아버님을 모시며 남편에게 생색 한번 낸 적도 없으니...
"그런데 그가 나를 십 년 넘게 속였고 드디어 발각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어떻게 하면 전략적으로 잘 헤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손해를 보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뒤통수를 칠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써 내려가듯, 내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수업의 내용과 연계하여 항상 진행한다. 나에게 고전은, 나에게 철학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부터 시작된다. 내 공부와 연구가 내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여성의 종속>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경험과 이성이 최대의 가치를 발휘한 1800년대에 밀(Mill)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힘든 것은 지금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그릇된 감정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어떤 주장이 사람들의 감정 속에 깊숙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비판이 제기되면 될수록 완강하게 버티는 힘 역시 더 커지는 법이다."
난 20년 가까이 스스로의 그릇된 감정에 속았다. 아니, 신랑이 날 속인 것에 앞서, 내가 나를 속였다. 앞으로 내 글쓰기는 대단히 사적인 글인 동시에 공적인 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님을, 고전의 서사들을 통해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본보기가 되길 원한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나에게 솔직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것은 아프고 처참하고 괴로운 일이다. 20년 넘게 강의를 하며 학생들의 눈이 가장 반짝이는 순간은 내 이야기를 고전작품에 빗대어 들려주었을 때다. 밀은 <자유론>에서 "정치 권력자들의 횡포뿐 아니라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의견이나 감정이 부리는 횡포,, 그리고 통설과 생각이나 습관이 다른 사람들에게 법률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윽박지르거나 행동 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경향"에 대해 말한다. 나 스스로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틀, 현모양처의 틀, 인간됨의 틀을 강요했다. 한 마디로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안 다음부터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은 내 안에 '남편'의 개념을 죽이는 일이었다. 의미 있는 타인으로서의 남편, 앞으로 어떻게 정의 내려질지 그리고 내 삶에 어떤 행동지침으로 관계의 문제를 재설정할지를... 잘 모르겠으나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