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폭력성 --- <독서국민의 탄생>
난 항상 궁금했다. 홀시아버님을 모시면서 남성들이 대부분 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말할 줄을 모르는 것인지, 또 이것도 아니면 침묵으로 상대에게 경멸을 표하는 것인지 말이다. 몇 해전에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아버님과 아이들이 함께 식사를 하면 아버님은 항상 눈을 감고 밥을 드셨다. 아이들이 수다라도 떨라치면 식탁에서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혼내셨다. 나는 "아버님, 그러면 언제 식구들과 대화를 하나요? 그나마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이때뿐인데 말이지요..."라고 말하면 다시 눈을 감고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남편은 이런 모습을 그대로 배웠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아마도 무의적으로 답습했다고 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아버님은 돌아가셨는데, 붕어빵을 찍어낸 것처럼 그 환영이 실체가 되었다. 허깨비는 실제가 되어 내 옆에 그대로 앉아 있다. 신랑은 자신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는 사람은 나인데, 십 년 넘게 속여왔던 일에 대해서는 괜찮고 그 이야기를 꺼낸 나는 그의 적이다. 그 사건으로 모든 가족이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좁은 빌라의 월세살이를 해야 했음에도 말이다. 내로남불이다. 어떤 말에도 대구 하지 않는다. 일 년 넘게도 침묵할 수 있다며 독을 뿜는다. 아버님의 침묵이 어머님을 떠나게 하셨다. 그런데 붕어빵은 똑같이 행한다.
요즘 우리나라 식민 시절 190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공부하며 연구 중에 있다. 서양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효석, 나도향을 매우 좋아한다. 나도향의 작품을 연구하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이런 대목이 나왔다. 음독(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기차 안에서나 전차 안에서 그리고 정거장 대합실에서 때때로 신문, 잡지류를 음독하는 사람을 본다. 가락이 좋은 시가나 미문이라면 몰라도 보통의 읽을거리를 음독하는 데서 그 사람의 독서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독서력을 언급하려고 이 책의 구절을 명시한 것이 아니다. 아버님과 그 아들의 침묵은 상대의 마음을 떠나게 했다. 남편의 말하지 않기는 상대를 아프게 한다. 어머님에게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했다. 이것을 모른다. 상대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현시대에는 "책을 소리 내 읽는 것"이 정말 이상하게 보이고 들리지만, 차라리 책이라도 소리 내 읽었다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깨닫지 않았을까. 그 소리들이 메아리 되어 스스로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지 않았을까.
아버님은 당신 방에 들어가 책을 읽었지만 소리 내 읽지 않았고 소통하지도 않았고 가족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며느리의 말은 고사하고 자식들의 말도 듣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실 때도 바지에 손을 넣고 걸어가셨고 내가 차려 준 밥을 버리기 일쑤였다. 아버님, 며느리가 있는데 바지에 손을 넣지 않고 화장실 가시면 안 돼요? 아버님, 밥을 드실 만큼만 푸시면 어떨까요? 다른 식구들도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이에 대한 반응은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관계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 이것이 마치 삶의 교본인 것처럼 남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갔다. 이것이 헤어질 결심의 첫 번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