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는 한 달 전쯤 그가 전화해서 자기가 사고를 쳤는데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오백만 원만 빌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아버님께 톡으로 보낸 유서를 확인하였다. 다른 이야기들은 잘 기억이 안 났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나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러서 아버님께서 그 원망을 들으실 것 같아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사고를 쳐서 돈을 빌렸다는 그 내용은 나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로 둘러댔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버님께 '왜 나에게 확인도 안 하고 그런 돈을 빌려주셨냐고 혹시 보이스피싱이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냐'라고 했다. 아버님은 '당연히 내 아들인데 너의 확인을 왜 받냐며 그리고 내가 왜 보이스피싱에 걸리냐'며 역정을 내셨다. 여든이 넘은 시아버지의 고집스러운 대화가 이어지자 더 이상 대화하기가 싫어졌다.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나야... 바람 좀 쐬러 나온 거야. 바람 좀 쐬고 천천히 들어갈게."
그의 목소리는 신경질적이며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아니, 지금 어디야? 내가 지금 있는 데로 갈게."
그리고 남편이 억지를 쓰는 느낌이 계속되자 경찰은 전화를 바꾸어 나와 대화를 이어갔다.
"안녕하세요. 지금 여기 강원도 인제입니다. 남편분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돌려보내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혹시 오실 수 있으면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네. 그냥 돌려보내시면 안 될 거 같아요. 제가 지금 택시 타고 갈게요. 지금 출발하면 두세 시간 걸릴 것 같아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의 목소리는 엄청 지쳐 보였고, 늘 나에게 친절하게만 대해줬던 그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이야기하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언니와 함께 차를 가지고 올 테니 시아버지와 함께 가자고 했다. 경찰서 근처에서 나와 시아버지만 내려주기로 하고 출발하였고, 그 사이 문자를 하나 받았다.
안녕하세요. 인제경찰서 상동파출소입니다.
남편분은 인제경찰서 형사팀 사무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주소랑 연락처 보내드립니다.
인제경찰서로 네비를 찍고 가고 있었는데 경찰서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더 이상 대기하기가 어려우니 홍천경찰서로 오시면 좋을 것 같다고. 서울에서 조금 더 가까운 홍천경찰서로 다시 목적지를 수정하였다.
추억으로 가는 길
시어머니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시어머니가 작년 5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아서 추적 항암제를 복용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가끔 전화 통화를 하거나 만났을 때 삶의 의욕이 없다며 자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그래서 시아버지에게만 연락을 드렸고 시아버지도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시아주버님에게만 내용을 간단히 전달하고 나서 시어머니에게는 다른 핑계를 둘러대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언니가 운전을 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뒤에는 엄마와 시아버지가 앉아 어색한 말투로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며 그렇게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약도 꼬박꼬박 드시고 식사도 좋은 것을 챙겨 드시고 운동도 하시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열심히 지내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야기를 계속 듣는데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여기저기 돈을 빌리고 삶이 망가져 가고 있을 때 어머님은 말로만 자결하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며 좋은 것만 챙겨 드셨다고 생각되니 기분이 몹시 안 좋았다. 그리고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눈에서 떨어졌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앞만 보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보이는 그 고속도로의 풍경 때문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고 있던 그 길은 우리 세 자매와 함께 마지막으로 갔던 서울양양고속도로였다. 그리고 왜 강원도로 향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양양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삼 년 전부터 일 년에 두 번씩은 양양에 가곤 했다. 도저히 떠올려지지 않은 장소 중에 추억의 장소가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언니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휴지를 찾아 나에게 건넸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정오가 지났고, 다들 말수가 줄어들을 때 즈음 홍천경찰서 담벼락에 도착했다. 어디가 입구인지 찾고 있다가 웬만하면 시아버지와 나만 도착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입구가 보이기 전에 내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시아버지가 근처 어디 가서 식사라도 하면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아버님!!!!!!! 우리 여기 놀러 왔어요? 지금 식사를 하자고요?"
버럭 화를 내었고, 당황한 엄마와 언니는 그냥 인사로 하신 말씀이니 얼른 내려서 들어가 보라고 했다. 아침부터 밥 이야기를 하셔서 아무리 인사치레라고 하지만 나는 진짜 너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지금 이 상황이 목구멍에 물 한잔 넘어갈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나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경찰서 입구에는 큰 주차장이 있었는데 멀리서 우리 집 차 앞에 그가 수척한 얼굴로 형사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버님이 먼저 도착하여 형사들과 인사를 했고, 뒤이어 나도 그 무리들 앞에 도착했다. 그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형사들은 인제경찰서에서 오신 분들인데 승합차인 경찰차 안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뒷 좌석은 문이 열려 있었는데, 가족에게 잘 인계되었다는 뜻으로 사인을 해야 하는 그 종이와 펜이 놓여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도착하였지만 그 종이를 보자마자 나는 눈을 가리고 소리 내어 울었다. 형사들은 진정하고 천천히 하시라고 다독여주었다. 떨리는 손으로 인적사항과 사인을 다 하고 나니 형사들은 바로 자리를 떠났다. 우리도 서울로 출발을 하기 위해 그는 운전석, 나는 조수석, 시아버지는 뒷좌석에 앉았다. 조수석 바닥에는 빈 소주 한 병과 이슬 톡톡 한 병이 데굴데굴 굴러다녔고 주변에는 멘토스 껍질이 널브러져 있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그는 늘 한잔 하자고 하면 이슬 톡톡 한 캔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소주 한 병이면 정신이 나갈정도였을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술냄새가 났다. 운전을 내가 하기로 하고 나는 홍천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 이야기를 나누고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휴게소에서 모두 내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아니, 왜 그랬어. 무슨 일인지 얘기 좀 해봐."
내가 말을 시키자, 그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다가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코인을 좀 했어... 대출이 많아. 점점 자신이 없어져서 그만..."
코인??? 코인이라니... 나는 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긴 코인뿐만 아니라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대출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6~7천이라고 했다. 약간 의아하기도 했다. 큰돈인 건 맞지만 6~7천 때문에 죽을 생각을 했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장사하려고 가게 하나를 차렸다가도 망하면 6~7천보다 훨씬 큰돈을 잃기도 하는데 그것 때문에 죽을 생각까지 했다니 나는 믿기 어려웠다. 이 내용 외에도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이 문제인지 더 자세하게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아버지는 둘이 대화를 하라며 자리를 비우셨는데 그사이 델리만쥬 한 봉지는 손에 들고 다른 한 봉지는 드시면서 나타나셨다. 다시 서울로 출발하기 위해 차를 탔는데 차 안에 델리만쥬 냄새가 가득했고 나는 점점 더 예민해졌다. 오후 3~4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당연히 출출하실 수도 있는데 짜증이 났다. 시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들이 살아있기 때문에 다시 입맛이라도 돌아오신 건가. 아니면 죽었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받아들이셨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역에 내려드렸다. 집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 안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하원할 시간이 되었다.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눈물은 마음에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었다. 얼마나 울어야 이 상황이 마무리될지 알 수 없었다. 밤이 되어 그는 긴장이 풀렸는지 먼저 잠이 들었고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1시간 간격으로 눈이 떠져서 그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며칠 뒤, 방콕으로 가는 프레스티지 좌석을 다섯 장 결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