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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감정의 흉터가 아물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딸에게

초감정

by 성희

​24층의 미소와 오랜 상흔의 실마리


​24층 아파트, 아침 6시. 밥을 안치고 도시락 반찬을 3~4가지 만든다. 이제는 밑반찬이 2개, 조리하는 반찬이 2가지이다. 도시락을 싸고 나면 아침 식사용 샌드위치를 준비한다. 양배추와 양파를 갈아 패티를 만들고 그후 커피를 내린다. 냉커피는 큰 얼음을 넣어 준다. 두아이의 식사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아들이 도서관으로, 뒤이어 딸이 직장으로 나서는 찰나의 순간, 내가 온종일 움직이는 동력은 이때 다 채워진다.

"잘 다녀와." 인사를 건네고 나면, 나의 주요 업무는 마무리된다. 그 후에도 청소와 빨래로 ,한 시간 정도의 노동은 공동일과의 끝이다. 그 후 찾아오는 자유시간. 피곤함 속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아들과 딸의 맑은 미소는, 오늘 하루는 맑음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일상 아래에는, 딸과의 관계를 5살 때부터 뒤틀리게 한 '초감정'의 깊은 흉터가 숨어 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지만, 딸의 입장은 보지 못했다. 그 시작은 시어머니와의 5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합가였다. 시아버님의 외도로 시작된 이 합가는, 어머니를 '하늘'로 받들 것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관계의 시작이었다.


​ 폭력적인 갈등과 어린 딸의 희생

​시어머니는 나를 인격체가 아닌, 자신을 받들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다. 내가 다니던 직장 곁 아파트에 살았음에도 당신에게 충성하는 동네사람들을 모아 내 험담을 했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사람들을 나누며 집안을 시끄럽게 했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시어머니가 어린 딸(당시 5세)을 자신과 한방을 쓰게 한 일이었다.

​"어디 갔다 왔느냐? 무슨 일을 했느냐?" 할머니의 취조는 지체 없이 나에게 화살로 돌아왔다. "이년아,~너 ~~~~해지?" 고함과 함께 퍼부어지는 폭언. 큰 잘못없이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나만 억울한 줄 알았다.

나는 딸이 할머니에게 '고자질'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눈치도 없는 애!" 나는 속절없이 어린 딸을 비난했다. 나의 감정만 폭발하던 시절, 5살 그 작은 아이가 할머니와 엄마 사이의 폭풍 같은 갈등을 견디고, 심지어 엄마에게까지 비난을 받으며 어떻게 버텼을지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시절, 딸의 감정선은 이미 영원히 고통스러운 상처로 형성되고 있었다.



​되돌아온 딸과 체념의 무게


​세월이 흘러 딸은 자라 명문대, 해외 유학까지 경험하며 '잘 자라주었다'고 믿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물질적으로는 최선을 다했으니,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딸은 인생의 길을 많이 돌아왔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가족의 평화는 깨지기 시작했다.

​딸이 돌아오자, 아들과 남편에게 맞춰져 있던 공간과 루틴에 '불편함'이 감돌았다. 우리는 "왜 진작 준비 못 했니" 하는 체념 섞인 기대로 딸을 바라봤고, 딸은 7급 공무원 시험에 번번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서른이 넘은 딸에게 '큰 꿈을 접은 절망감'이 있었을 텐데, 우리는 딸을 포근하게 품어주지 못하고, 뒷바라지를 다시 해야 한다는 무게감만 생각했다.

​게다가 오랜 시험 준비에도 아들에게는 지지를 보내던 내가, 딸에게는 무거운 '한숨'을 보내는 것 같아 보였던 모양이다. 딸은 이 모든 상황을 '편애'로 느꼈다. 5살에 형성된 감정의 골은, 서른 살이 되어서도 메워지지 않고 깊어져만 갔다.




​절정: 감정의 폭발과 고백


​결국, 감정의 홍수가 터졌다. 최근의 사소한 갈등이 기폭제가 되어, 딸의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25년 전의 상처가 터져 나왔다. 냉랭함과 화가 폭발하는 순간, 나는 딸의 절규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 다섯 살 때… 할머니와 엄마의 싸움 속에서, 엄마의 비난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엄마는 그때 나한테 '눈치도 없는 애'라고 했잖아!"

​그 순간, 나의 세상이 무너졌다. 나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서른 살 딸의 눈물 속에서, 5살짜리 작은 아이의 공포와 외로움이 겹쳐 보였다.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시어머니와의 갈등 상황에서, 가장 약한 아이에게 폭언과 비난을 쏟아냈던 나의 폭력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울부짖는 딸에게 다가갔다.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만 같았던 '초감정'을 직시하는 순간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네가 감당하지 못할 그런 말을 엄마가 했구나! 5살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터져 나오는 눈물 속에서, 나는 그때서야 진심으로 딸의 아픔에 공감했다. 내가 겪은 고통보다, 더 어린 딸이 겪은 공포가 훨씬 컸음을 깨달았다. 두 모녀 사이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다. 감정이 바닥까지 소진된 후, 집안에는 회복할 수 없는 냉랭함이 깃든 줄 알았다.



​결말: 화해와 초감정의 치유

​하지만, 시간이 치유를 가져왔다. 격렬한 감정의 홍수가 지나간 지 이주일. 나는 평소처럼, 다른 감정 없이 행동했다. 놀랍게도 집안은 평화로웠다. 아들과 딸은 다시 같은 밥상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했고, 서로 먹을 것을 챙겨주며 낮에 혼자 있을 나의 식사까지 걱정해 주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들의 웃음, 출근하는 딸의 맑은 미소. 그 미소에서 나는 더 이상 5살 아이의 그림자를 읽지 않는다.

​지금 나는 깨닫는다. 시어머니와 단 5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그때 딸을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게 했던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그리고 그리 고통을 받으면서도 인내했던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일찍 분가를 했더라면, 딸도 나도 오랜 세월을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딸과의 진심 어린 화해와 사과는, 5살에 멈춰있던 딸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25년 동안 외면했던 '초감정'을 직시하고 치유할 용기를 주었다. 24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오늘도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온전하게 회복된 딸의 미소를 바라본다. 오늘 하루는, 정말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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