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아침, 엄마의 손길
시계가 6시를 알리면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도시락 싸기. 밑반찬으로 준비해 둔 장조림, 멸치볶음, 팥조림, 일미무침 덕분에 오늘은 두부조림과 돼지 주물럭만 후다닥 조리해 넣으면 된다. 아들에게는 속 편한 둥굴레차, 딸에게는 시원한 냉커피를 텀블러에 채워 넣고 나면 주방은 분주한 아침 공기를 가득 머금는다.
6시 30분, 약 알람이 울리면 고혈압약과 영양제를 챙겨 먹고, 아이들의 비타민과 오메가 3도 챙겨 놓는다. 남편이 하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나의 몫이 되었다.
"마미 마미!" 하며 딸이 먼저 문을 열고 나오고,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며 아들이 뒤따른다. 어제 초기 감기로 열이 났던 아들은 혈색이 좋아 보인다. "오늘 컨디션 좋아요"라는 말에 안심한다. 아침부터 냉커피를 마시던 딸에게 따뜻한 차를 권하니 동의한다. 남편의 지론이었던 '따뜻한 물 한 잔'을 나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국화차'로 행하고 있다. 양파와 두부를 넣고 구워낸 양배추 패티를 식탁에 올린다. 토스트기에서 빵이 튀어 오른다. 아들은 두 개, 나와 딸은 한 개씩, 패티와 양상추, 양배추와 양파채 썰어 놓은 것을 곁들여 먹는다.
일상의 공감, 사소한 다정함
세 식구가 식탁에 앉는다. 딸이 컨디션이 안 좋은 동생에게 병원에 들러 수액을 맞고 가라며 살뜰히 챙긴다. 수험생에게 필요하다는 말과 "알았다"는 아들의 대답 속에 남매의 자연스러운 평화가 깃든다.
딩동! 쿠팡 주문 알림과 함께 사과가 도착한다. 사과가 귀해지기 전, 우리는 참 많이 먹었는데. 사과값이 세 배 이상 오른 후 살림을 맡았던 남편은 사과를 사지 못했지만, 나는 다소 비싸도 기꺼이 산다. 문득 차박 여행 중인 남편이 좋아하는 사과나 고기 없이 어떻게 식생활을 해결하는지 궁금해진다.
딸이 사과를 보고 문득 오래된 기억을 꺼낸다. 냉장고에 사과가 딱 한 개 남아있던 날, 그날따라 사과가 먹고 싶어 깎아 먹었다는 딸. 뒤이어 일어난 남편은 사과가 사라진 것을 알고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사람이 '내가 먹으려고 남겨둔 것을 왜 먹었냐'며 큰소리로 화를 냈고 하루 종일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묵은 감정, 그리고 엄마의 공감 연습
딸의 이야기에 묵은 감정이 올라온다. 한창 배고픈 학생이 사과 한 조각 먹을 수도 있는 일인데, 그것을 두고 잔소리했던 남편은 여전히 자신이 정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상처로 남은 그 감정에 공감하고 싶지만, 감정 코칭 연수를 받았음에도 익숙하지 않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마음으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머릿속으로 공감 5단계가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공감, 미러링,
"그 사과를 네가 먹었다고 아빠가 화를 내었구나. 그말이 그럼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네. 많이 속상했겠구나! "
나름 열심히 챙겨주었지만 나의 공감 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또한 나에게 아직까지 행해지는 남편의 잔소리 때문에 같이 있을 때면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큰일로 인한 갈등은 없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시작한 말이 주는 상처다. 나의 잘못도 깨닫는다. 내가 그말을 듣기 싫고 자식들에게도 못하게 방어선ㅇㄷㄹ 쳐야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은 단풍 아름다운 어느 산을 걷고 있을지? 저녁에 춥지는 않을지, 잘 먹고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일상을 채우는 마음, 그리고 나의 자리
평화로운 아침 식탁, 따뜻한 국화차, 두부조림과 양배추 패티. 남편의 빈자리는 사소한 다정함과 깊어진 공감으로 채워지고 있다. 과거의 잔소리가 남긴 작은 상처는 어쩌면 오늘 나의 자리에서 더 단단한 마음으로 가족을 보듬는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국화차 향기 속에서, 가족의 아침은 다정하고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