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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남 Apr 24. 2024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설거지를 시작했다.독한엄마5

아들의 설거지로 달라진 가족문화

왜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밥그릇을 스스로 닦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들이 초등학교 2~3학년 정도였을 거 같은데 밥을 먹고 나서 자기가 먹은 식기들을 씻기 시작했다.

어릴 적 아들애는 식탐이 많은 편이었다.

한입에 사과를 물고 다른 손에 또 하나의 사과조각을 들은 상태에서도,

엄마인 나에게 사과를 집어달라고 몸짓으로 표현하곤 할 정도로 잘 먹었다.

자라면서 밥도 마찬가지로 늘 가장 빨리 먹어치웠다.

천천히 먹으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도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자기가 먹은 식기들은 싱크대에 가져다 놓도록 했었다.

그래서 밥을 먹은 후에는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넣는 습관은 있었지만 설거지는 안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설거지까지 했다.

이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서 바라보며 칭찬을 했다.


나: 와~이제 설거지까지 하는 거야? 너무 고마운데

아들: 응(대답하며 씩 웃었다~)

나: 그럼 지금부터 우리 모두 그렇게 하면 되는 건가?

딸, 남편:......


그리고 그날부터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각자 닦았다.

딸아이는 아들과 반대로 밥을 너무나 천천히 먹었다.

어릴 때도 너무 안 먹으려 해서 서로 고생이 많았었다.

밥알을 세고 있나 할 정도로 천천히 개작되고 먹어서 식사시간에는 늘 꼴찌였다.

아들-남편-나-딸.. 이 순서로 거의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그날부터 거의 그 순서대로 각자 먹은 자신의 식기를 닦는 설거지분담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각자 먹은 식기를 닦고 바구니에 엎어두면 싱크대가 비어지고,

다음에 밥 먹은 사람이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가끔 거의 비슷하게 식사를 마치게 되는 경우에는 앞에 하던 사람이 뒷사람 것까지 서비스로 해주며 생색을 내기도 했다.

또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몰아주기도 했다.

밥 먹은 후 이어지는 설거지가 종종 사소한 재미거리가 되었다.

냄비나 프라이팬 등의 조리 도구는 식사 전이나 식사 후에 주로 남편이나 내가 닦았다.


이런 방식의 설거지분담은 생각 외로 식사 후의 설거지 스트레스를 줄여줬다.

심리적인지 실제로 줄어서 그런지 설거지감이 엄청나게 줄어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먹은 밥그릇은 내가 닦는다!!"

혹시 아들애가 전생이 있다면 탁발공양을 하는 스님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어쨌든 아들의 설거지 시작으로 그 이후에는 설거지에 대한 부담이 확~내려갔다.

이런 설거지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삼아 친정식구들에게 수시로 이야기를 하며 권했었다.

그리고 서서히 8남매인 친정식구들의 가족문화도 이렇게 변화되었다.

지금도 친정식구들이 집에서 모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으레 각자 먹은 식기들은 각자가 설거지를 마친다.

우리나라 모든 가족문화가 이렇게 바뀌면 참 좋을 거 같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궁금하다.

아들애는 그날 왜 갑자기 설거지를 시작했을까?

물어보면 '그냥~'이라고 답하고 만다.

그래서 '맞벌이하는 엄마를 도와주려는 마음이었겠지' 하고 내 맘대로 좋게 생각했다.


*덧, 인터넷에서 설거지 그림을 찾다가 깜짝 놀랐다.

 사람이 등장하는 이미지는 거의 다 여자들이었고, 그것도 방긋 웃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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