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에 관하여#24
네가 원한게 아니다.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저 그렇게 살아야 했을 뿐이야.
숨 막히는 불안과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도
너는 참 잘 자라났구나.
이 정도면 잘 성장한 거야.
그러니깐 너무 자책하지 마.
울지도, 서러워도 하지 마.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잖아. 그러니깐 이젠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
무언가 사정이 있었겠지, 어쩔 수 없었겠지, 이해하려고 용서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작은 상장에 그 지옥을 담아서 오래된 나무서랍 세 번째 칸에 넣어버리자.
그리고 그 나무서랍을 기억의 가장 먼 곳으로 밀어내는 거야.
자꾸만 눈에 보이는 그 서랍이 불편할 수 있지만 다가가지 않으면 돼.
다가가서 열어보지만 않으면 된단다.
아직은 살아내야 하니까 우리 그렇게 하자.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잖아.
너는 그 어린 네가 가엽지도 않니.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던 그 아이가 안쓰럽지 않니.
보통의 삶이라는 게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어린 너는 보통의 삶은 아니었잖아.
그녀의 기억과 어린 너의 기억은 다르게 쓰여있고,
그건 평생토록 서로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사람은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기억을 한다지.
엄마의 눈으로 본 어린 네 모습과
어린 네가 보는 본 부모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게 기억될 테니깐.
어린 너를 바라보며 무너지는 어른이 된 나는
언제쯤 고른 숨을 쉬어냈을 수 있을까.
어린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낸 거니.
행복의 감각을 알지 못하고 자란 네가 더 아프지 말라고,
내 눈을 가려버린 건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해.
보여도 보이지 않아.
들려도 들리지 않은 채, 해사한 웃음이란 가면을 쓰고 미움받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지금의 내 모습을 어린 네가 보면 슬퍼할까.
아니면 안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