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에 관하여#23
여기 둘러싸인 것들이 전부라고 믿지 않으려 한다.
원한다면 떠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버릴 수 있다.
나를 묶고 있는 건 현실이 아니라, 얽매여 있다는 생각 그 자체이다.
살아 있는 한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될 수 있고,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선
미련 없이 등을 돌릴 자유가 있다.
누군가에겐 잿빛일지라도
내 눈에 같은 회색으로 보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세상을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다.
남이 정한 초점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각도와 호기심으로.
오랫동안 눈치를 보며 기분을 조절하고 타협하며 살아온 탓일까.
외면했던 작은 상처들이 조용히 곪아 올라 이제야 냄새를 드러낸다.
아픔이든 슬픔이든
자의든 타의든
이미 내 몫이다.
그렇다면 인정하고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리는 비를 맞으며 버티는 일.
그동안 내가 진짜로 바랬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