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를 외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통화 버튼 하나가 예전엔 아주 다른 의미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이름을 눌러 전화를 거는 지금과 달리 그땐 기억력이 곧 연결의 열쇠였다. 작은 수첩에 빼곡히 적힌 친구들의 전화번호, 중요한 사람은 굵은 펜으로 표시해두었고, 자주 통화하는 사람은 수첩 없이도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었다. 공중전화는 우리에게 항상 열려 있는 연결통로였지만, 100원의 동전이 없으면 아무에게도 닿을 수 없던 단절의 문이기도 했다. 그 특유의 금속 향기와 투입구에 동전을 넣을 때의 바스락거림, 버튼을 꾹꾹 누를 때마다 울리는 똑딱 소리, 그리고 마지막에 수화기를 들고 기다리던 그 정적. 연결음이 들릴 때면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때론 불안하기도 했다.
집 전화는 가족 모두의 것이었기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선 시간도 골라야 했다. 밤늦게 전화하면 예의에 어긋난다며 혼이 났고, 통화가 길어지면 가족들이 눈치를 주곤 했다. 그래서 통화는 늘 짧고 진지했다. '할 말만 딱 하고 끊자'는 마음가짐은 어쩌면 그 시대가 우리에게 가르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단순한 의사 전달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행위였다. 긴장 속에서 누르는 번호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한 글자만 틀려도 전혀 다른 사람이 받게 되는 일이 허다했기에, 전화는 언제나 약간의 모험 같았다. 그 시절의 전화는 단순한 기계적 연결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틋한 통로였다.
지금처럼 쉽게 연결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그 시간의 연결은 더 깊고 진중했다. 그리움은 기다림을 통해 증폭되었고, 음성은 감정을 실어 더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누군가의 번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자주 떠올리고 마음에 담아두는 일이었으니까. 이제는 연락처가 사라져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몇 개의 번호를 외우고 있다. 그 시절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차지했던 이름들이다.
손안의 마법 같은 변화
세상이 정말 마법처럼 바뀌던 순간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기계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스마트폰이 내 손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바로 알게 되었다. 지도를 손가락으로 확대하고, 터치 하나로 음악을 틀며, 영상통화를 하며 얼굴을 마주보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을 나는 이 기계 하나로 경험했다. 어느새 손에 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거리는 가까워졌고, 시간은 빨라졌고,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그 안에서 새롭게 구성되었다. 친구와의 대화, 사진, 업무, 게임까지 모든 것이 손 안에서 해결되기 시작했다.
기술은 삶을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게도 했다. 누군가의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그만큼 실시간 응답을 요구받는 부담도 커졌다. 기다림의 미덕은 점점 사라졌고, 대신 즉각성과 효율이 기준이 되었다. 나는 점점 더 많은 일에 빠르게 반응해야 했고 생각보다 먼저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익숙함 속에서 느껴지는 피로가 쌓였다. 기술은 분명 나를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때때로 그 편리함이 내 감정을 건너뛰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곱씹고 기다리는 시간은 줄었고 대신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많아졌다. 나는 그 시절의 변화가 단순한 도구의 진보가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전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그 전환의 연장선상에서 AI라는 또 다른 혁신을 마주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깊이는 달라질 것이다.
사라진 직업과 새로 생긴 일들
내가 어릴 땐 동네마다 필름 사진관이 있었다. 어두운 유리창 너머로 붉은 조명이 깜빡이던 그 공간에는 약품 냄새가 그득했고 기다림과 설렘이 함께였다. 사진을 맡기러 가던 날 카운터 너머에 있던 사진사 아저씨는 항상 카메라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필름 한 롤에는 스무 장 남짓이 들어 있었고, 우리는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며칠 뒤 작은 봉투에 담겨 돌아왔다. 봉투를 열어 사진을 하나씩 꺼내 볼 때, 결과를 미리 볼 수 없었던 그 긴장감이 지금 생각해도 참 특별했다.
지금은 사진 한 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삭제하고 다시 찍는다. 포즈를 고르고, 필터를 입히고, 수십 장을 찍은 뒤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사진은 더 이상 '기록'이라기보다 '연출'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사진을 인화해주는 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졌고, 인화기와 인화지를 팔던 문구점은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이렇듯 다양한 직업들이 이제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이름이 되었다. 그 사이 유튜버라는 직업이 생겼다. 카메라 하나, 마이크 하나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며 생계를 꾸리는 시대다. 인플루언서로 브랜드를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직업들은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장래희망으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일이 되었다. 나는 그 변화의 시작을 보았고 그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직업이 사라졌다고 해서 아쉬움만 남는 건 아니다. 새로 생겨난 직업들 역시 그 시대의 감각과 필요에 맞춰 진화해온 결과다. 언젠가는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직업들도 누군가에겐 신기한 과거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나는 가끔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그것이 과연 맞는 방향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다.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문장들이 떠오르지만, 그중 어느 것도 지금 우리 딸들에게 진짜 도움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말끝을 흐리게 된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영어는 꼭 공부해둬야 한다, 컴퓨터는 잘 다루는 게 좋다, 이런 직업이 좋다. 나도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이 오히려 너희의 가능성을 좁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실시간 동시통역기가 귀에 꽂히고 코딩을 모르는 사람도 앱을 만들 수 있는 시대.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기술들이 몇 년 만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장면들을 여러 번 봤다. 회사에서 후배들이 나보다 훨씬 빠르게 새로운 툴을 익히고, 내가 어렵게 배운 프로세스가 클릭 몇 번으로 대체되는 걸 보면서 지금 내가 가진 조언들이 과연 얼마나 유효할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딸아이들에게 뭔가를 말하는 일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말 하나가 방향이 될 수 있고, 그 방향이 시간이 지나면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말하지 않기 위해 더 깊이 고민하고, 침묵 속에서 너희를 더 오래 들여다본다. 혹시라도 너희의 세계에 내가 낡은 기준을 들이밀게 될까 봐, 스스로를 자꾸만 검열하게 된다. 어쩌면 이 조심스러움이야말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로서 가장 큰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확신보다 겸손이 필요하고, 지식보다 경청이 중요한 시대. 그래서 나는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더 많이 듣고, 더 오래 바라보려 한다. 우리 딸들이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 말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된 아빠로 남고 싶다.
정답보다 믿음을 남기고 싶다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보다 방향을 잃었을 때 버티게 해주는 중심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우리 딸들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고 싶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나는 우리 딸들이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흔들릴 수 있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다. 실패해도 괜찮고, 돌아가도 괜찮다. 아니다 싶으면 빠꾸했을 때 아빠인 내가 서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시 일어설 힘은 반드시 생긴다.
이 믿음은 정답보다 오래 간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보다,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등불 같은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안다. 우리 딸들이 어떤 세상에 던져지든 결국 길을 찾아낼 거라는 걸. 낯선 환경에서도 적응할 줄 알고, 뜻밖의 상황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우리 딸들을 믿는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 웃으며 버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행복은 항상 큰 성취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작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이 더 오래 남는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일 것이다.
작은 실패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잃어보고, 좌절해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 과정 속에서 진짜 힘이 생긴다. 잘 해내는 아이가 아니라, 잘 회복하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 너희가 언젠가 내 손을 놓고 훌쩍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너희가 어떤 길을 가든 믿고 응원할 것이다. 그 여정을 조용히, 그리고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