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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만났을 때

by 박정욱

그때는 몰랐다. 그 만남이 평생이 될 줄은

나는 아내를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났다. 같은 학교와 학원을 다녔고, 처음에는 그저 서로 이름을 아는 정도의 사이였다. 특별히 대화를 나누거나 관심을 가질만한 계기도 없었다. 그러나 우연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 안에서 조금씩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항상 활발했고 긍정적이며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땐 그것이 호감인지도 몰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수업보다 그녀가 더 기다려졌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시작된 관심은 서서히 마음을 데워갔다.


운명같이 만났다.

졸업과 함께 연락이 끊기고 각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고, 성인이 된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과 동시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지만 예전의 기억과 감정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고 연락을 이어가다 보니, 이전보다 훨씬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말투가 여전히 긍적적이고 따뜻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관계는 이전보다 더 단단했고, 결국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사랑은 종종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평범했던 순간들이 특별한 기억이 되어 돌아온다.


사랑이 시작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내 일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똑같이 반복되던 하루가 생기를 띠었고, 별 것 아닌 문자 한 줄이 온종일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던 시간보다 그녀와 잠깐 마주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고, 잠시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사랑은 그렇게 사람을 바꾼다. 이전엔 무심하게 지나쳤던 노을, 나뭇잎의 색깔, 햇살까지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그 시절의 나는 그녀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설렘 속에 보냈다. 아내는 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 특별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되었다.


사랑은 나를 바꾸려는 의지를 만든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처음엔 단순한 호감에서 시작된 감정이었지만, 그녀를 더 알아갈수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녀 앞에서는 무심코 했던 말도 조심하게 되었고, 습관처럼 행동하던 것들을 하나씩 고치고 싶어졌다. 내가 스스로를 다듬어가던 그 시간들이 사랑이었다.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나는 스스로 변하고 싶었다. 그 마음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었고, 억눌리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온 의지였다. 사랑은 때로 상대를 위해서 시작되지만, 결국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진지하게 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일수록 자신을 더 지켜야 한다

사랑을 하면 모든 걸 주고 싶어진다. 상대의 작은 표정 변화에도 마음이 휘청이고,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에 하루의 기분이 좌우된다. 나 역시 아내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다. 학창 시절 용돈을 아껴가며 작은 선물을 준비했고, 시험 기간에도 그녀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질수록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그때 배웠다.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지만, 결국 나를 지키는 사람이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희가 언젠가 사랑에 빠졌을 때, 그 감정이 얼마나 강렬하고 벅찰지 안다. 그렇기에 우리 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너 자신을 더 아끼라고. 사랑은 나를 잃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나를 더욱 아끼고 가꾸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이 오래 기억되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사랑에도 리듬이 있다

아내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함께 겪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때론 그것이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오해를 만들었고, 서운함이 쌓이면 침묵이 길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순간마다 우리가 서로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의 진폭은 줄어들고,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많아졌지만, 우리는 그 리듬을 맞추어가며 함께 걸었다. 사랑이란 매일이 꽃길일 수는 없지만, 걸어가는 길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 사랑을 지켜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돌아보면, 그것도 추억이다

아내와의 함께한 날들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기억들도 많다. 엉뚱한 타이밍과 장소에서 고백을 해버려서 어색했던 날, 서툰 말 한 마디에 눈물을 흘리게 했던 일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기억들이 지금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사랑이란 항상 완벽할 수 없고,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 진짜 이야기가 담긴다. 내가 실수했던 순간들, 철없던 행동들마저도 돌이켜 보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장면들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딸들이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길 바란다. 너무 조심스럽게만 굴지 말고, 때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은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감정이고, 직접 부딪혀봐야만 알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니까.


사랑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연애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아내는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조금씩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 사랑은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매일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아내가 채워주고, 아내의 불안함을 내가 감싸주면서 우리는 단단해졌다. 지금도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다투고, 서로를 오해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사랑은 끝이 아니라, 그 과정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우리 딸들이 사랑을 만났을 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감정이 얼마나 강하고 벅찬지 안다. 모든 것을 걸고 싶고,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떠오르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도 그 사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사람 없는 하루는 상상하기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그 감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절실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 그런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잃지 않고, 함께한 시간들을 나중에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게 기억할 수 있기를. 사랑이란 그 자체로도 소중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한 사람이 전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안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았으면 한다. 결국 사랑은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언젠가 깨달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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