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친구 엄마와의 통화
“자기, 어떻게 채니를 그렇게 잘 키웠어어~?”
아는 엄마와 통화할 일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뜸 이런 말을 들었다.
첫째 채니가 5살 때 어린이집을 같이 다녔던 친구 주연(가명)이가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5살 때 친했던 이후로 6,7살에는 별로 왕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초등학교에서 같은 반이 된 주연이와 채니는 서로가 정말 반갑고 의지가 되었던 것 같았다.
10월은 주연이가 채니 뒷자리에 앉게 되었고,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주연이가 집에 가서 채니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았다. 주연이의 엄마 말은 이랬다.
“채니가 공부를 잘하잖아요~ 친구들이 종종 채니한테 뭘 물어보나 봐요. 그런데 그때마다 채니는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친구를 놀리지도 않고 항상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대~ 어쩜 그렇게 애를 잘 키웠어 자기~? “
얼마 전 담임 선생님과 상담차 통화했을 때의 감동이 다시 한번 밀려왔다. 가정교육을 정말 잘 받은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신 선생님.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내 아이의 칭찬을 들을 때의 그 감격스러움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채니가 발표를 했나 봐요. 동생이 엄마한테 혼날 때 마음이 아프다고 했대. 주연이가 자기는 안 그러는데 채니는 그렇다고 신기하다 하더라고 하하하”
어린이집 시절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학원에다가 동생 이야기를 참 많이도 하는 우리 채니. 발표할 때나 선생님에게나 역시 동생에 대한 사랑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선생님도 채니가 동생을 참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셨었다.
주연이 엄마는 동생에게도 어쩜 그러냐며, 자기 정말 채니 잘 키웠다고 “자기 정말 칭찬해~~~”라고 해주었다.(나보다 언니다)
5살 아가 시절 때부터 채니를 봐온 엄마라 더 기특하게 보였던 것 같았다. 그 시선이 참 감사했다. 채니를 늘 좋아해 주는 주연이에게도 정말 고맙다.
특히 우리 채니. 보석 같은 딸 우리 집 첫째. 요즘 엄마를 왜 이리 하늘로 둥실둥실 떠오르게 하는 건지. 자식 잘 키웠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울컥해서 죽겠다.
공부 잘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야 아직 1학년이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다. 인성이 아래에서 탄탄하게 받쳐주어야 지성도 쌓을 수 있다. 공부해서 배운 걸 나중에 세상에 좋게 쓰일 수 있으려면 어렸을 때 학습만 해서는 안된다.
좋은 대학 가서 딥페이크질이나 하는 등의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면 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모는 왜 공부만 시켰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들도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아는 걸 친구도 알게 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마음이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면서는 잘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오랫동안, 친구를 경쟁자로 보기보다는 같은 배를 타고 함께 열심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존재로 보는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친구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게 좋아, 아니면 채니도 친구들도 아는 게 많아서 같이 그거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고 하는 게 좋아? “
“친구들이 많이 아는 거.”
“그래, 친구들이 무언가를 잘 아는 건 좋은 거지. 그래서 같이 알아가면 좋은 거야. 친구가 잘하는 건 질투할 일이 아니라 축하해줘야 하는 일이야. 그렇지?”
“응, 맞아 엄마!”
학습식 영유를 나와 초등부 탑반에 다니고 있어 주변에 은근한 점수 경쟁이 있는 채니에게 늘 해주는 말이다. 아직 경쟁이라는 걸 하게 하도 싶지 않고 점수에 대한 압박은 엄마만 경험했으면 한다.(압박을 안 느끼고 싶은데 노력하지만 완벽하게는 잘 안된다)
친구가 잘되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고, 그래서 친구가 모르는 건 친절하게 알려줘야 하는것.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예쁘다. 다행히 아직 초1인 우리 아이는 마음이 말랑말랑하다. 말랑말랑할 때 잘 만져줘야지.
주연이 엄마의 칭찬을 채니에게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주연이가 자신에게 글자 쓰는 걸 물어본 적이 있어서 알려준 적이 있다고 했다. 친구가 뭘 모르면 놀리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러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채니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걸 왜 놀려?! 1학년이 모를 수도 있는 거지!”
마음그릇이 큰 아이로 자라줘서 고마워,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