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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니 Oct 25. 2024

바쁜 아침에 둘째가 물을 쏟았다.

자녀 철학교육 : 두 번째 감사 이야기


매일 밤 감사이야기를 한 지 수개월이 지났을 즈음 어느 날 밤, 언니와 엄마의 감사이야기를 늘 듣고만 있던 세 살짜리 예니가 말했다.  


"나도 감타이야기 하예" (나도 감사이야기 할래)

처음으로 입을 열었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언니랑 엄마의 이야기만 듣다가 이제 드디어 자기도 뭔가 말하고 싶어졌나 보다 하고 큰 기대 없이 들었다.


"턴탠님이 어이니지베 이떠더 감타해떠"


생각보다 구체적이었고, 진심이 담겨있는 듯한 감사이야기였다. 우리 막내가 살랑이는 목소리로 처음 내뱉은 감사 이야기를 잊고 싶지 않아 한번 더 물어보며 어둠 속에서 녹음을 했다.


선생님이 어린이집에 있어서 감사했다는 감동적인 목소리를 다음날 어이니집 선생님께 보내드렸고, 선생님은 크게 감동하셨다.





세 살 아가도 감사이야기를 내뱉기 시작하니, 언니는 감사의 마음이 기본으로 장착되는 경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동생이 등원 준비 중에 물을 쏟아, 시간에 쫓긴 엄마가 분노의 샤우팅을 날리기 직전에,

"엄마, 그런데 우유가 아니라서 감사하다 그치?"


동생이 너무 아파 힘이 없어 엄마가 슬픈 눈을 하고 있으면,

"엄마 그런데 토를 하지는 않아서 그래도 감사하다 그치!"


생활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 그 자체를 몸소 실천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감사이야기를 한 지 2년 여가 흐른 어느 날이었다. 다섯 살이 된 동생이 인체 관련 책을 보다가 "언니! 손이 없이 태어나는 사람도 있어?" 하고 물어보니 감사 이야기 3년 차 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응~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우린 두 손을 갖고 태어난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건 없어. 알겠지?"



침대에 누워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을 떠올려보는 짧은 시간 덕분에, 8살 아이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었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모든 것이 선물임을 깨달았다는 이어령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이 어린아이가 벌써 알고 있는 것이다.




영어, 수학만 교육할 게 아니다. 철학을 해야 한다. 나도 철학을 잘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안다. 철학은 저 멀리 있는 대단한 학문이 아님을. 삶 그 자체임을. 그래서 일상에서 쉽게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평생 아이들에게 물어볼 것이다.


"오늘 하루는 뭐가 감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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