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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중에도 책육아 하는 방법(2)

'안 읽으면 말고'의 정신

by 필로니


초1 아이 원서 읽는 방법


아이의 영어책 읽기를 돕는, SR 점수에 맞춰 책을 고르는 나의 방법이 있다. 본인 점수보다 낮은 점수대의 책 60%, 자기 점수대인 책 30%, 본인 점수보다 높은 어려운 책 10% 정도로 읽게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무조건 아이가 원하는 책을 읽고, 도전책은 엄마가 골라 아이가 오케이 하면 읽는다. 또한 아이가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기에 아이의 관심사를 최대한 반영한 책이어야 한다. 당시 아이는 판타지에 푹 빠져 있어서 해리포터도 재미있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통했다.




도전책은 엄마가 각 잡고 들이밀면 안 된다. 안 그래도 어려워 보이는 책인데 아이가 부담을 느끼게 하면 안 된다. 나는 해리포터 책을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닭강정집 외식을 할 때 가져나갔다. 엄마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인데 한 번 빌려와 봤다며. 당시 최애 닭강정을 먹으며 아이는 첫 페이지를 펴보았고, 그렇게 해리포터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Harry Potter 2권에 도전하다


1권은 그냥저냥 읽었다. 엄청 재미있어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리포터의 기억이 잊혀갈 즈음, 겨울방학 때 갈 말레이시아 여행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꽤 긴 시간 여행을 하는 거라 책을 몇 권 챙겨갈지 고민하며 고르고 있었는데 해리포터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 가서 오랜만에 해리포터 2권(AR6.7)을 도전책으로 읽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에게 권했다. 안 그래도 2권을 훑어봤는데 1권보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렇게 <out of my dream>과 함께 원서 두 권이 채택되었다.



막상 여행 초반엔 책을 읽지 않았다. 가져와놓고 왜 안 읽냐고 타박할 생각은 없었다. 늘 그렇듯 ‘읽으면 좋고, 안 읽으면 할 수 없지’하는 마음이었다. 특히나 여행 중이니 더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잠자리 독서로 찔끔찔끔 읽다가 우리가 섬에 도착했을 때부터 정말 많이 읽기 시작했다. 섬에서는 막상 할 게 그리 많지 않다. 바닷가에서 실컷 놀고, 숙소 수영장에서 또 놀고, 동생이랑 영상도 보고, 상황극도 하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여지없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외쳤다. "엄마 나 여기서 책 읽는 거 정말 너무 좋아!!"



아이의 관심사를 따라가는 책육아는 잘못되는 법이 없다. 누가 좋다고 하는 책, 이맘때 읽혀야 한다는 책 보다 제일 좋은 책은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책이다.




TV틀지 않기, 훈수 두지 않기


한글책은 무얼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문학책은 고르지 못하고, <하루 10분 초등신문>을 가져갔다. 책을 너무 많이 가져갈 수는 없으니 한 권 읽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책을 골라야 했는데 딱 알맞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주 오래 구석에 처박혀있었다. 어린 왕자, 해리포터 등의 문학책들에 밀려 찬밥 신세였다. 그러다 여행 막바지 즈음에, 숙소에서 심심해하던 어느 날 드디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여러 숙소를 돌아다녔지만 거실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존재감 엄청난 그 큰 TV를 한 번도 틀어본 적이 없다. 집에서도 TV는 작은 방에 처박혀 있고 잘 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도 TV가 있어도 틀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다. 허전하지 않다. 매일 좋아하는 20분짜리 영상 한 개 정도 태블릿으로 본 게 전부다.



그러니 드디어 그 책에 손을 뻗게 된 것이다. TV는 한 번 틀면 계속 보게 된다. 안 봐도 틀어놓는다. 그런 환경에선 아이가 심심해하다가 책을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찬밥 신세였던 그 책은, 뉴스 기사 지문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쓰여있는 책이다. 그리고 맨 아래 기사를 잘 이해했는지 퀴즈를 간단히 풀어보며 어휘력을 향상할 수 있는 학습란이 있다.



아이는 퀴즈는 풀지 않고, 그냥 읽기만 했다. 퀴즈 좀 풀어볼래? 하는 말이 여기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참았다. 아직 1학년인데 책을 그렇게 접근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기에 자유롭게 읽도록 놔뒀다. 그랬더니 다음 날, 다시 처음부터 그 책을 펼치더니 연필을 가져와 문제를 풀어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제 좀 풀어 보라고 말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정말 상을 주고 싶었다.




엄마가 풀라고 해서 푸는 것과, 자신이 책을 한 번 쓱 읽어 본 후 문제도 한 번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풀기 시작한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이래라저래라 옆에서 훈수를 두는 것은 재미와 흥미를 가지고 책을 보는 아이에게 찬 물을 끼얹는 짓이다. 문제를 풀라고 해서 풀면 자신이 원해서 푼 게 아니라 엄마가 시켜서 푼 게 되기 때문에 뿌듯함도 덜하다. 아이가 성취감을 가질 기회를 엄마가 박탈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평소에 알고 있어도 순간순간 잊곤 한다. 수시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정한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제자리로 금방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자발성, 자기 주도성,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기에 흔들릴지언정 그 길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여행지에는 관련책, 좋아하는 책, 도전책


여행지에는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적이다. 그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말 읽기 싫으면 안 읽는다. 그러니 수준을 조금 높이되 아이의 관심사인 책을 가져가야 한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갯벌 여행 갈 땐 갯벌책, 바닷가 갈 땐 바다책, 이렇게 자연관찰 책들을 많이 가져갔었다. 말레이시아 여행에서도 말레이시아에 관한 어린이 책을 가져갔다. 전혀 읽지 않았다.




평소에도 책에 관해서는 강제성을 부여하는 걸 꺼리지만 여행지에서는 더더욱 책을 안 읽은다고 뭐라 해서는 안된다. ‘안 읽으면 말고’의 정신을 장착해야 한다. 누구보다 우리 어른들이 더 잘 안다.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진다는 걸. 다 겪어봤지 않은가. 엄마의 소원이 자신의 책 읽기라는 걸 아는 순간 독서는 사춘기 때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여행지에 가져가는 책은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엄마가 읽으라고 하면) 여행의 재미와 감동을 반감시켜 버릴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것들과 관련된 책, 평소 좋아하는 책, 주제는 관심사이지만 글밥이나 어휘가 좀 어려운 도전해 볼 만한 책, 그리고 안 읽으면 말고의 정신을 챙겨가면 아이의 마음이 더 풍요로워지는 여행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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