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가 취미였던 엄마의 영어유치원 생존기
이 글에서 사용하는 '영어유치원', ‘영유’라는 표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명칭입니다. 실제로는 교육부 인가를 받은 정식 유치원이 아닌, 영어교육을 중심으로 한 사설 유아교육기관을 지칭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아이는 영어유치원(이하 '영유)을 졸업했다. 매우 만족했기에 둘째 아이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영유 좋아요?"라고 물으면, 쉽게 "좋아요!"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첫째가 입학한 뒤, 하루가 다르게 영어 실력이 느는 모습을 보며 신이 났었다. 그때는 자신 있게 주변에 "영유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학습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은 후로는 함부로 추천하지 않기 시작했다.
나의 말 한마디로 어느 집 아이의 인생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괜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저는 만족하지만, 잘 생각해봐야 해요. 아이가 힘들어할 수도 있어요."라는 애매한 말만 할 수 있었다.
둘째가 여섯 살을 앞둔 어느 시점부터 동네 엄마들에게서 영유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다. 첫째를 영유에 보낸 경험이 있는 엄마인 내게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예 나만의 모범답안을 만들어 두었다.
"아이가 언어 감각이 있거나, 영어를 좋아하거나. 이 둘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되면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힘들 수 있어요.“
타고난 언어 감각이 없다면, 어린 시절의 영어 학습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반드시 영유에 보내고 싶다면, 입학 전 최소한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엄마 아빠가 꼭 해줬으면 좋겠다. 언어 감각도 없고 영어에 흥미도 없는 어린아이가 책상에 앉아 영어를 학습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런 아이가 공부 머리가 없으니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 아이에게는 아직 영어를 배울 시기가 아닐 뿐이다. 영어 학습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로 반짝일 수 있는 아이가 너무 이른 학습으로 인해 그 빛을 잃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나는 내 아이들이 누군가를 이기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 그 자체에서 오는 기쁨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 배움의 과정을 통해 떠오르는 생각을 잘 빚어 자신만의 고유한 빛을 뿜어내는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어떤 지식을 머릿속에 넣기보다는 아이의 세계를 넓히는 교육을 하고 싶다. 영어는 그 세계를 확장시켜줄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영어는 어릴 때 다 끝내고 이후에는 수학에 집중해 입시에서 유리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유를 선택한 게 아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나는 아이가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더 큰 세상을 만나 그 속에서 자유롭고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엄마다. 그것도 한없이 팔랑… 아니, 펄럭거리는 귀를 가지고 있는… 그런 내가 소신을 갖고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고수하는 건, 사교육과 비교 경쟁이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거의 고문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했다. 주변 엄마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전문가의 말을 참고하기 위해 책을 펼쳤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늘 노력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쉬이 평온해지지 않았다. 일희일비가 취미였다. 숱한 날들을, 점수 앞에서 초연해지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찌르며 보내야 했다.
허벅지를 찔러가며 굳게 지키려 했던 소신은 ‘지금 당장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길게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그 목표는 이루었다고 자신한다. 직접 고른 영어책을 신나게 읽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즐겁게 확장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유에 보낼지 말지는 주변 엄마들의 말을 듣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여, 내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잘 들여다보고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나는 다만, 나의 글이 영유를 고민하는, 혹은 보내 놓고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초조함은 아이를 향한 다그침이 되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영어라는 언어를 즐겁게 만날 수 있는데 보탬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둘째 아이도 언니가 다녔던 곳에 다니고 있다. 둘째니까 첫째 때보다는 점수 같은 게 신경 쓰이지 않..기는 개뿔 똑같다. 나는 또 허벅지를 찔러야겠다. 첫째 아이때 했던 노력을 또 해야겠다. 그래서 그때의 노력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