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유(튜브)느님!

나에게 유느님은 유재석 님이 아니다.

by 필로니


모든 아이가 똑같이 좋아하는 채널은 없다


나도 아이를 처음 키우니 유튜브 영상 노출만으로도 영어를 알아듣고 흥얼거리는 아이가 정말 신기했다. 그런 나의 경험담을 들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했고, 그때마다 늘 유튜브 노출을 적극 추천했다. 그러면 꼭 따라오는 질문이 있었다.



"어떤 채널이 좋아? 뭘 보여줘야 해?"



넘버블럭스, 스티브앤매기


물론 유명하고 좋은 영상은 많다. 대표적으로 <Super Simple Songs>, <STEVE AND MAGGIE>,

<Numberblocks> 같은 채널들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채널이라도 우리 아이가 안 보면, 그건 그냥 남 좋은 것일 뿐이다. 다른 애들은 다 잘 본다는데 우리 애는 왜 이러지? 할 필요가 없다. 내 아이가 특별한 걸, 어쩌겠나.



나는 유명한 채널도 보여주었지만 내가 제일 많이 보여준 건 아이의 관심사에 맞는 영상이었다. 곰 관련 책을 본 날은 ‘bear for kids’, 길에서 개미를 한참 구경하고 온 날엔 ‘ants for kids’를, 아이가 우주에 한창 빠졌을 땐 ‘space for kids‘, ’universe for kids‘, ’solar system song‘ 같은 우주 관련 영상을 수도 없이 찾아 보여줬다.


아이의 흥미를 따라가기


"우리 애는 딱히 그렇게 좋아하는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엄마들에게 몇 가지 질문만 던져 보면, 아이의 관심 분야가 툭 튀어나온다. "얘는 우주 같은 것엔 관심도 없어요. 맨날 내가 요리할 때 옆에 붙어서 같이 하겠대요. 쓸데없는 것만 좋아해요."라고 투덜대는 엄마에게는 cooking for kids, baking for kids를 검색해 보라고 했고, "공주 드레스만 좋아해요." 하는 엄마에겐 princess for kids를 추천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 중 쓸데없는 건 없다.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걸 따라가면 된다. 자꾸 학습으로 다가가려고 하니까 관심 분야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아닐까?



아이가 많이 본 영상 중 하나인 주니토니 우주 영상


아이의 독서 지도도 유명 전집이나 권장도서가 아니라 아이의 흥미를 따라가야 하듯, 유튜브도 똑같다. 소재가 뭐든 kids만 붙이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이 촤르르 펼쳐진다. 영어 배우기에 있어 이보다 더 고마운 도구가 있을까 싶다. 나는 이 도구를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활용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엄마 욕심을 잠시 내려놓는 것. 좀 학습적이지 않아 보여도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만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야 영어가 좋아진다. '공부'가 아닌 게 된다. 영어가 그냥 재미있는 놀이, 신나는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영어는 즐거운 거구나"라는 감정, 그 긍정적인 첫인상이 아이에게 생기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하고 귀한 일이다. (아이가 그 어떤 영어 영상에도 흥미를 붙이지 않는다면, 최후의 보루인 장난감 언박싱 영상도 있다.)



물론, 영상 없이 오로지 책으로만 성공한 분들도 있다. 그런 방법이 아이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잘 맞는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난 아니다. 0에서 시작해 책으로만 이끌어가는 엄마표 영어? 나는 절대 못한다. 나는 내 끈기와 인내심이 그 정도로 훌륭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엄마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가끔 아이를 가르칠 때의 내 모습을 마주하면 아주 절절히 느낀다. (책을 아예 안 보여주었다는 건 아니다. 메인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에게 '유느님'은 유재석 님이 아니다. 유튜브님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의 영어 학습은 '듣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리스닝이라는 첫 번째 산을, 아이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넘을 수 있게 해 준 유느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다음 화 : 한글 영상에 익숙해져 영어 영상을 안 봐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