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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 in the usa Mar 25. 2024

가족의 완성



    우리가 사는 시대에 가족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다. 예전 세대의 식구는 혈연의 관계에 있는 특정한 대상들을 의미하고 그 구성원의 모습들은 하나의 형태로 정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복잡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겐 그 대상과 의미가 더 성숙해졌다. 엄마랑 또는 아빠랑 살 수도 있고, 강아지나 고양이가 내 귀한 식구가 될 수도 있으며 꼭 내 일상을 모두 나눌 식구 없이 나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한 1인 가구를 이룰 수 있다. 이 모든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모두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 가정을 들여다보자면, 우리는 단촐하게 나와 남편 둘 뿐인, 아이가 없는 기혼 부부이다. 우리가 사는 가정의 형태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아이’ 일 것이다. 적어도 내 주변은 그렇다.

그러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직 아이가 없다. 아직 아이가 찾아와 주지 않아서 우리는 둘이서 만든 가정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아직 엄마가 되지 않은 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은 이미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있다. 교복을 입고 낄낄거리며 떡볶이를 먹고 쏘다니던 앳된 얼굴들이 아직 남아 있는데 어느새 아이들을 건사하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그 얘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러 버린 것 같아 서글프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단함을 토로하는 친구들의 얼굴에 사랑이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할 때엔 그들의 충만한 삶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도 얼른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불안감이나 초조함이 들진 않는다. 내 인생이 꼭 남들과 똑같이 흘러갈 것이란 장밋빛 낙관을 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이고, 이미 캐나다로 훌쩍 떠나며 한 번 경로 이탈을 해 본 배짱도 한몫할 것이다. 나는 나대로 사는 모습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나 스스로가 얼마쯤 대견했다. 주변의 모습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아직 엄마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짓눌리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가 기뻤다. 그건 아이를 가지고 싶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로서 일상을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나는 결혼도 그런 이유 때문에 조금 늦어졌었다. 정말 결혼을 해야 되는 이유가 있을까? 나는 태평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아직 시집 안 가고 버티는 건 너뿐이라며 발을 동동 거렸다. 나의 경험으론 한국에선 두 개의 선택의 순간이 온다. 첫 번째 순간은 미혼으로 남느냐 아니면 기혼으로 넘어가느냐의 기로이다. 특히 진지한 관계의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건 제법 큰 문제가 된다. 두 사람 모두 결혼을 하고 싶어 하거나 또는 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문제없지만 대개 다른 상대방은 나와 생각이 다른 법이다. 그러면 이제 선택은 내 몫이다. 두 번째 순간은, 기혼이 되었을 때 아이를 낳을 것인가 아님 딩크로 남을 것인가의 갈림길이다. 이 것 역시 부부가 둘 다 의견이 맞으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보통 아내와 남편이 서로 생각이 다른 경우가 상당하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부부 사이에 처음으로 생기는 큰 쟁점이기도 하다. 나는 첫 번째 선택은 이미 내렸고, 두 번째의 갈림길에서 멈춰 있는 상태인 셈인데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염려해서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으로 이사 올 때 내가 기대했던 것은 완전한 해방이었다. 가족계획이니 아이니 이런 이야기는 이제 듣지 않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건 순전한 나의 착각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특히 이 보수적인 웨스트 버지니아가 얼마나 가족 중심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는지 미처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솔직한 나의 감상을 말하자면, 미국은 미혼이 살기에 적합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었다. '프렌즈(Friends)'나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이 두 tv쇼를 무척 재밌게 봤고, 주인공들이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무척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모두 그들처럼 싱글로 자유롭게 사는 줄 알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뉴욕처럼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프렌즈'의 여섯 친구들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도 사실 모두 뉴욕 한복판에 살고 있는 뉴요커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시골 웨스트 버지니아에 자리 잡았고 이런 곳엔 한 가지 법칙이 있다는 걸 깨닫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편의 직장에서 열리는 파티,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회식 비슷한 것에 왜 내가 늘 함께 참석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 법칙을 적용하면 간단해진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어느 순간 파트너 즉, 반려자가 있는 것이 당연해진다. 별 다른 개인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미래를 공유하는 애인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거기서부터 가족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다. 어딜 가든 나는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서 분류된다. 나의 남편도 평판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내인 내가 그와 함께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웬만한 파티나 모임에는 파트너를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캐나다에서 지낼 때 내가 갔던 파티들은 기껏해야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집에서 왁자지껄하게 노는 홈파티였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가도 괜찮았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남편과 함께 초대받은 파티들은 옷도 신경 써야 했을뿐더러 남편의 배우자로서 좋은 인상도 남겨야 하는 어려운 자리였다.

왜 내가 너의 회식에 내가 따라다녀야 하냐고 불평불만을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가 같이 가기 싫다는 이유로 남편이 혼자서 참석하게 내버려 두면, 그건 우리 부부 사이에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온 동네에 떠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입장으로는 누군가와 미래를 약속할 만큼 진지한 사이가 되었을 때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의 처음으로 주어지는 선택지라면, 미국인들에게는 이 사람과 내가 함께 사느냐 마느냐 에서부터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꼭 결혼의 유무로 상대방을 반려자라고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나와 애정을 기반으로 하여 같은 주소지에 거주하고 안정적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곧 나의 파트너이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꼭 결혼이 아니라 동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지만, 미국에서는 일단 함께 살아보고 나서야 먼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보통이다.

이렇게 일상을 공유하는 두 사람은 서로 신뢰가 쌓일수록 아이를 갖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솔직히 말해 고민을 한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에 비해서 결혼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은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로 자녀를 가지고 있는 가정의 형태가 이곳에서 매우 흔하다. 파트너와 함께 늘 플러스 원으로 묶이는 법칙, 가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며 반려자와 함께 아이를 낳는 것이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여기면서도 서로에 대한 맹세, commitment는 좀처럼 하기 힘들어하는 그들의 속내를 한국인인 내가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미국이란 나라는 워낙 크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 때문에 모든 곳이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남편의 사촌인 크리스티나는 두 아들의 엄마이고, 그녀의 파트너인 조쉬와 함께 곧 태어날 새 생명을 기다리고 있다. 웃는 모습이 꼭 닮은 두 사람은 딱 보아도 깊은 애정을 기반으로 한 안정감이 있고 좋은 부모이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두 사람이 부부일 것으로 생각했다. 다정한 그녀는 남편과는 친남매처럼 자라서 우리와도 왕래가 잦은데 내가 미국에 이사 온 첫 해에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그녀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나도 꼭 기억해 두었다가 축하해 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남편에게 크리스티나의 결혼기념일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편은 그들에겐 결혼기념일이 없다고 했다.

“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내가 묻자, “결혼을 안 했으니까.” 라며 남편은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내가 마치 1 더하기 1 은 무엇이냐고 물은 것 마냥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적잖게 놀랐다. 물론 나는 사실혼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고, 캐나다에서도 애인과 동거를 하며 일상을 꾸려가는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이상적인 커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에게 자녀가 있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두 아들의 엄마아빠이자 곧 새로운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이 여전히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 받아들이는 자신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낯설게 느껴지는 감정을 떨쳐버리지도 못했다. 남편은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데이트를 했고, 약혼을 했다고 덧붙였지만 그건 별 소용이 없었다. 나는 한 술 더 떠서 약혼까지 했는데 왜 굳이 결혼은 안 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크리스티나 가족들을 다시 만난 건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는 베이비 샤워 파티에서였다. 보슬보슬한 금발 머리를 한 두 아이들은 집안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그런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던 크리스티나와 그녀의 파트너인 조쉬는 우리를 보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모두들 크리스티나의 막내 아이가 아들일지 딸 일지 궁금해했는데, 폭죽을 터트리자 하늘색 꽃가루가 쏟아졌다. 팔랑거리는 꽃종이를 잡느라 두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었고 조쉬는 너무나 기뻐하며 크리스티나의 뺨에 키스를 했다. 크리스티나는 사실 딸이었으면 했다며 조금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행복으로 반짝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크리스티나가 불쑥 내 손을 꼭 잡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곧 너희에게도 아기 천사가 찾아올 거야."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던 나는 그냥 멋쩍게 웃었다. 왜 저런 이야기를 하나 싶어 곰곰이 생각하다가 별안간 그녀의 말뜻이 퍼뜩 헤아려졌다. 그녀는 우리 부부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우리가 이렇게 와서 자신의 축하해 준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고, 우리를 위로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오래된 연인 함께 귀여운 아이들을 가지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크리스티나의 시점에선 서로 법적으로 묶이기까지 한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것이 더 의아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녀도 분명 어느 저녁에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해놓고 왜 아이가 없지?"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나 뼈저리게 느낄 수 있어서였고, 내가 또 굉장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 사이의 불완전함을 찾으려 했던 나의 경솔함을 크리스티나는 그녀 자신조차 모르게 단단히 고쳐 놓았다. 그들의 방식은 내가 판단한 일이 아니다. 그건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의 몫이다. 오랫동안 함께 한 그들은 척하면 척하고 호흡이 맞는 커플이었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진이 빠진 서로를 번갈아 가며 챙기는 모습은 단단하고 행복한 하나의 가정이었다. 그건 법적인 종이 하나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유대감이었다. 나와 남편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나는 여전히 그들이 사는 방식을 그저 인식하고 있을 뿐, 정확하게 그들의 뉘앙스대로 체감하지는 못한다. 엄마가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가족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온통 가족, 연인으로 한 데 묶여 한 몸처럼 움직이는 분위기도 조금 어색하다. 남편의 파티에 따라가면서도 여전히 불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사는 생각하는 방식과 사는 모습이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듯이 이 곳의 사람들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서로를 의아하게 여겼던 나와 크리스티나처럼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늘 조금씩 엇갈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두  가정의 행복과 사랑, 또 많은 이들이 이룬 다양한 형태의 가정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의해 정확하게 측량되는 물질적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아직 구식인 나를 받아들이자고 깔끔하게 인정했다. 점점 나를 받아들이다 보면, 조금 더 성숙하고 깊은 마음으로 걱정은 진심 어린 걱정으로, 축복은  순수한 축복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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