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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 in the usa Apr 01. 2024

웨스트 버지니아, 웨스트 버지니아


    1980년 9월 6일, 웨스트 버지니아의 마운티니어 필드에서 잊을 수 없는 기타 연주가 시작된다. 컨트리 뮤직 사상 가장 히트한 노래의 반주를 듣자마자 경기장의 관중들은 열광한다. 필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뻐한다. 경기장 한가운데 노래를 하는 건 전설적인 뮤지션 존 덴버 John Denver 이다.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통기타를 치는 그는 요즘은 보기 힘든 아날로그, 싱어송라이터 그 자체이다. 드디어 그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 를 노래한다. 정겨우면서도 애수 어린 그의 목소리가 필드를 가득 채우고 그보다 더 큰 함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의 라이브는 웨스트 버지니아에서는 하나의 아이코닉한 장면이 되었고, 이곳 사람들은 두고두고 그날의 일을 이야기한다.

“존 덴버가 여기 경기장에서 정말 라이브를 했던 거 알고 있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 노래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영혼과도 같은 노래이다.  존 덴버는 정작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이 아니지만, 그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장엄한 구릉들을 떠올리며 단 하루 만에 이 노래를 만들어냈고, 한 음악 평론지에서는 이 노래를 두고 당신이 살아보지 못한, 심지어 가보지도 못한 곳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이라고 했다. 그건 아마 그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노래를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광부들이 일으켜 세운 삶의 터전과 가정을 꾸려가는 고단함, 그럼에도 아름답고 한적한 시골의 풍경을 붓 끝으로 그려낸 듯 써내려 간 그 가사 면면이 살펴보면 이곳의 삶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푸른 산과 강을 사랑하는 것.


  남편은 이 노래를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부르고 다녔다고 했다. 아버지와 동생, 친구들과 어울려 스포츠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던 어린 시절에, 그들이 응원하는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팀이 승리하면 꼭 선수들과 관중들 모두 Country Road 노래를 부르는 세레머니를 빼놓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남편을 따라 농구 경기를 처음 보러 갔을 때도 그야말로 성별과 연령을 초월하여 모두가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신기했다. 'West Virginia, Mountian Momma' 라는 구절에 이르면 그들의 목소리도 한껏 커졌다. 산으로 이루어진 주, Mountain State 라는 별명이 있는 이곳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상징과도 같은 노래가 되었으며, 결국 주민들의 큰 애정으로 2014년에는 공식적인 주를 상징하는 노래로 지정되었다.


  아빠는 남편이 웨스트 버지니아 토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이 노래를 불렀다. 아빠는 젊은 시절에 통기타를 멋들어지게 칠 줄 알았는데 연습곡 중엔 당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였던 존 덴버의 곡들이 빠질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이 열렬히 환호하자 흥이 난 아빠는 어딘가 깊숙이 보관하고 있던 기타까지 찾아와서 열창하기 시작했고, 그 둘은 처음부터 서로를 좋아했다. 그때의 나는 웨스트 버지니아는커녕 미국으로 이사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관심 밖이었지만 엄마조차도 이 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때 내가 이 노래를 좋아했다면, 그리고 노래의 가사를 음미할 줄 알았다면 처음 웨스트 버지니아에 정착할 무렵 겪었던 갈등이 조금은 줄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시간이 흘러서야 할 수 있었다. 이젠 한적한 도로를 달릴 때면 일부러 찾아서 크게 틀어놓을 정도로 나도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살아본 적도 없는, 가보지도 못한 곳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평에 나도 무척이나 동의한다. 평화로운 들판 옆을 달릴 땐 존재하지도 않는 이곳의 유년시절이 못내 그립다.


  Almost Heaven, 거의 천국과도 같다며 자랑하는 아름다운 자연과는 달리 웨스트 버지니아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체감하는 것은 인프라의 부재이다. 거의 모든 국토가 도시화가 되어 있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그 지역 간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기후는 물론 시간대까지 달라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문제는 경제적 기회는 물론이고 문화적인 다양성을 누리기도 힘들다. 광산업으로 지역 경제를 부흥시켰던 과거는 이미 오래전에 쇠락하고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로 추락한 아픈 현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남아 있는 거주민들 중 상당수가 특히 그중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알코올이나 약물과 관련된 중독 문제에 시달린다. 특히 약물과 관련된 중독에 대한 지표는 심각한 정도여서 그를 우려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할 정도이다. 웨스트 버지니아 안에서도 피츠버그와 펜실베이니아의 경계에 가까운 지역은 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어 풋풋한 학생들이 해마다 이사를 오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무실이나 병원들이 모여 있어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남편이 살았던 고향을 포함하여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지표의 심각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을 거야.”

캘리포니아 LA에서 살고 있는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남편 역시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으로 이미 여러 번 이곳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 직설적인 불평이 무례하단 생각보다는 왜 그녀가 그렇게 진절머리를 치는지 십분 이해가 가는 바였다. 그녀의 시댁은 거의 남부 지역과 그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그야말로 깡시골이었다. 치약도 쓰지 않는다는 그녀의 시댁 식구들은 남편조차도 기함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트 버지니아가 어째서 그들의 슬로건을 Almost Heaven이라고 고수하고 있는지는 가늠하려면 그 땅을 지켜온 오래된 산을 오르듯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쇠퇴한 도시는 겨울의 나뭇가지처럼 초라함을 앙상하게 드러 내었으나 그렇게 서서히 소외된 덕분에 아직도 웨스트 버지니아의 자연은 그 자체로 푸르고 눈부시다. 천천히 가라앉는 쇠락의 기운이 지긋지긋해져 떠나버린 사람들도,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을 끝내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고즈넉한 산과 울창한 숲, 굽이치는 강만큼은 온전히 지켜내어 오늘도 여전히 순수하고 깨끗하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여름날의 샌드스톤 폭포 Sandstone Falls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단풍이 처국처럼 아름다운 쿠퍼스 락 Cooper's Rock 은 그에 대한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식으로든 웨스트 버지니아를 떠올렸을 때 죽어도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죽어서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뉴 리버의 강물처럼 파랗게 대조되는 두 가지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나의 솔직한 마음은 정말로 그렇다. 답답하고 지루해서 한없이 벗어나고 싶다가도 어느덧 미국의 내 고향이 되어 버린 미운 정 고운 정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다. 누가 나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다면 한국과 웨스트 버지니아라고 대답하겠다. 나의 정체성은 한국에서 모두 완성되었지만, 내 영혼의 성장의 어느 정도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몫이다.  

인종차별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하는 밉살스러운 사람도 꼭 한 번은 마주친다. 그러나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남편과 그의 식구들 덕분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토박이들은 금세 알아볼 수 있다. 뭐랄까, 도시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무언가, 그러니까 순박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은근하고도 꾸준한 그들만의 성미가 분명히 있다. 좋은 식으로든 나쁜 식으로든 그들은 투박하게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서 건넨다. 내가 본 어떤 곳보다 복합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할 말이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글을 꼭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시간이 영영 멈춰버린 것 같은 웨스트 버지니아의 어느 시골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존 덴버의 노래를 또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어쩜 웨스트 버지니아에 살아보지도 않은 양반이 어떻게 이런 곡을 썼을까 신통해하며 흥얼거려 본다. 나는 언제나 진작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다는 구절이 마음에 든다. 한국이 여전히 그리우면서 서서히 미국의 삶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과 어딘가 닮아 있다. 머나먼 나의 조국 한국과 남편이 곁을 지키는 우리 집이 있는 웨스트 버지니아 사이에서 향수를 느끼는 이 마음은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이라면 알아줄까.

가만히 어떤 광경을 상상해 본다. 나는 지금 산길로 구불구불한 웨스트 버지니아의 한 도로를 달리고 있고, 이 상상 속에서는 한국까지 그냥 쭉 도로로 달려갈 수 있다. 나는 한국으로 곧장 갈 작정이다. 라디오를 문득 틀었더니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노래의 가사처럼 나도 문득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질주하는 자동차를 스쳐 지나가는 표지판엔 이렇게 적혀 있다.

Welcome to West Virgi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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