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니강 Mar 04. 2024

경계성 인격장애의
빨간 원피스 여인




몇 년의 치료 과정을 거치고, 저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한국에 머물러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몇 년의 치료 기간 동안 치료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한국과 영국을 대 여섯 차례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치료를 했다가 학교를 다니다가 갈팡질팡 했답니다. 결국은 저도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의 학위는 너무나도 탐이 나는 멋진 학위였지만, 저는 4년의 (스코틀랜드의 학사 학위는 잉글랜드와는 달리 4년입니다.) 공부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drop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진 퇴학, '자퇴'를 결정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저의 건강이 따라주지를 않았기 때문에 내린 큰 결정이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해서, 저는 미술 치료를 계기로 하게 된, 미술을 '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추상 화가'가 되게 된 거죠. 본격적으로 미술가, 즉 '화가'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처음부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항상 몰스킨 노트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틈틈이 스케치를 했고, 그리곤 좀 더 큰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스케치를 바탕으로, 파스텔로 색을 칠하곤 했지요. 아침 일찍부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 앞 카페에 가곤 했어요. 카페엔 일하던 아르바이트 남자 직원이 있었는데, 제가 제 그림에 대해 어찌나 귀찮게 물어봤던지...... 나중엔 제가 진저리가 났던지 저를 피하더군요. 처음엔 남자 직원이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해 주곤 했는데, 매일 반복되니 짜증이 났던지, 절 피하더군요. 결국엔 저를 아는 척도 안 해서 저는 상처를 받고 그 이후로는 물어보지 않고 그림만 줄곧 그리다 왔답니다. 

혼자 그렇게 계속 그림을 그리다가 미술계의 지인 P선생님을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의 지인이기도 한 P선생님은 그림에 아주 유명한 작가 S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후로 계속 작가 S선생님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첫 개인전으로, 매년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국내, 외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꼭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꼭 빨간색 원피스에 긴 파마머리를 하고 다녔습니다.

머리는 숏컷트 였는데, 붙임 머리를 붙이고 다녔지요. 거기에 더하자면, 항상 14cm 높은 굽의 킬힐을 신고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하고 다니곤 했습니다. 동네에 다닐 때에도 조금 덜하면 덜했을 뿐,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짙은 풀 메이크업에 높은 킬힐,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심지어는 동네 마트에 다닐 때도 그런 모습으로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 당시 제 모습이 저의 '경계성 인격 장애' 였던 모습이었다는 것을요! 그렇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경계성 인격장애' 판정을 받은 환자였던 겁니다.








치료 중반기에, 저에게 맞는 병원을 찾기 어려워서 병원을 옮겨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종합 병원을 다니던 시기였습니다. 저의 경계성 인격장애의 증상이 심했던 당시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정신과 상담치료를 한 달에 두 번 받았는데, 교수님께 한 번, 남자 레지던트 선생님께 한 번 받았었습니다.

정신과에 상담을 갈 때도 물론 앞에서 말한 복장대로 아주 튀는 빨간 원피스에 높은 굽을 신고 가거나, 비슷한 복장으로 가곤 했는데, 이 때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상담을 해주시는 남자 레지던트 선생님을 남몰래 사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상담 때마다 한 껏 꾸미고 갔습니다. 거기다가 선생님께 제가 얼마나 선생님을 사모하는지, 저의 감정 일기를 드린답시고, 선생님에 대한 저의 마음을 편지로 건내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창피하고, 선생님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전 그런 눈에 띄는 빨간 원피스의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였습니다.








저는 제가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였다는 것을 최근에 저의 병명을 알아보다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경계성 인격장애'란 성격장애의 일종으로, 정서, 행동, 대인관계 등에서 극히 변덕스럽고 예측이 불가능하며 기본적으로 허무감과 극단적인 감정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제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파괴적이며, 타인을 쉽게 믿다가 쉽게 상처받기를 반복하는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특징이 있는 인격 장애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이 병이 완쾌되었다는 것도 주치의 선생님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척이나 궁금하여 주치의 선생님께 어떻게 제가 이 병이 나았냐고 여쭈어 보니,

"세월이 지나고, 제니 씨가 나이를 먹어가며 인격이 성숙하면서 이 병이 나은 것 같네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이 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낫게 된 것도 참으로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인격이 성숙해졌다는 것, 성숙해지기 위해 했던 수많은 노력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린 정신병을 불치병으로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낫기 어려운 병이긴 하지만, 꼭 나을 수 없는 병은 아니라는 걸 전 말하고 싶습니다. 





이전 06화 낮 병동에도 '봄날'이 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