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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Jun 10. 2024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다시 찾아온 봄마저 지나갈 때쯤, 나는 아직도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싫었다. 꽤 오래된 이야기.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았다. 내가 봐도 내가 너무 못났고, 나를 싫어하는 내가 나는 너무 싫었다.


봄이어야만 했던 이 계절은 내겐 찾아오지 않았다. 그 따스함이 열기로 바뀔 때쯤 봄이 지나갔음을 알았다. 나는 여전히 좁은 자취방에 홀로 있을 뿐이었다. 나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나를 누구보다 싫어하며.


글을 쓰며 하나씩 나를 비워냈다. 어릴 적 얘기를 쓰며 그 시절의 나를 비워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남은 건 지금. 초라한 나. 과거를 겹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내 모습. 그저 한결같이 못난 자신.


나를 바꾸기 위해 했던 많은 노력들. 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시간들. 그게 다 지나고 남은 나는 여전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싫었다.


또다시 나를 비워내자. 비워내고 비워내서,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내가 사라지면 나를 싫어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계속 나는 글을 썼다.


글에 나를 담을수록 내가 지워지는 것 같았다. 내 숨소리마저 사라진 글 속에서 나는 살아갔다. 거기에서 나는 그저 자신. 내가 없는 그곳의 나를 좋아했다.


내게 봄은 그곳에 있었다. 내 봄은 거기에 있었다. 봄을 그렇게 보냈다.


자신감이 낮은 내가 싫어서 나를 사랑하는 척했다. 그게 원인이었다. 내가 점점 나를 싫어하게 된 이유. 나를 인정할 수 없었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에서, 나는 바뀌었다.


자신감이 낮은 나를 인정하자. 못난 자신을 사랑하자. 아름다운 세상에서 추하게 살아가자.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나는 더 이상 내게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세 번의 겨울을 올 때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지. 나를 싫어하는 나니까.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니까.


다시 나를 비워내자. 다시 나를 지워내자.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담아내며, 다시 비워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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