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상(相)을 보면 그것이 곧 여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32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수보리는 여래가 중생들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32상(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바꾸어 말하면 32상(相)을 보면 그것이 곧 여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이가 자기만의 고유한 생김새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생김새를 보면 곧 그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든 중생 누구나 32상(相)을 갖고 있든 말든 미인이든 아니든 본질은 여래인데, 32상(相)으로서 여래를 본다면 32상(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여래는 결코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수보리존자는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런 대답을 해서 후세에 수많은 오해와 제멋대로의 해석을 낳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석가모니불께서 말씀하시는 여래(如來)라는 것을 석가모니부처님과 모든 대우주의 여래불(如來佛) 같은 존재만으로 한정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즉, 수보리 자기 자신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중생들의 본성인 여래(如來)는 미처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수보리가 이렇게 받아들였다면 32상(相)으로써 여래를 관(觀)할 수 있다는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대답인 것이다. 이는 단지 언어 전달상의 의미가 불일치한 데서 생긴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 열반 후 금강경을 구술할 때 이 대목을 그대로 넣은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리를 설한 이 금강경 뜻에 수보리 존자의 틀린 대답을 굳이 집어넣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후대에서라도 당연히 삭제해 버렸을 것이다.
우리 중생들의 본래모습인 여래를 제외한다면 32상은 여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니 당연히 32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으니까.
전륜성왕도 32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중생이고 불행하게도 현실에는 없는 존재이니 생각할 것도 없다.